가을밤 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인간은 자신의 크기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별들이 침묵 속에서 빛나고, 그 사이 작은 행성 하나가 우리 삶터다. 그 작은 땅 위에서도 우리는 하루의 걱정을 우주의 중심인 양 끌어안고 산다. 더 가져야 안심하고, 더 앞서야 행복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시선을 우주로 넓히면 그토록 크게 여겼던 근심도 한 점 먼지처럼 작아진다. 삶은 경쟁에서 이겨 차지해야 할 전리품이라기보다 잠시 우리에게 허락된 경이로운 시간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순간적인 즐거움이나 많은 소유를 뜻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과 덕을 삶 속에서 실현하며 잘 살아가는 상태에 가까웠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였다. 사람도 오래 살았다고 저절로 성숙하지 않는다. 기쁨과 실패, 사랑과 이별을 겪으며 그것들을 원망이 아니라 이해로 바꾸어낼 때 비로소 삶에 깊이가 생긴다. 오래 살았다는 것과 잘 살아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인류가 긴 시간을 살아남은 이유도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갈등하면서도 돌보고 배우며 협력해 왔기 때문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는 불도 단순히 추위를 몰아내는 불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불 주위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은 기술의 시작이면서 관계의 상징이었다. 문명을 지탱해온 것은 불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그 불을 함께 둘러앉을 줄 아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문명이 풍요로워질수록 우리는 역설적으로 결핍을 더 크게 느낀다. 이미 가진 것에는 익숙해지고 갖지 못한 것은 크게 보인다. 비교는 결핍을 확대하지만 감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게 한다. 행복은 소유의 총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같은 현실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핍이 되기도 하고 충만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삶의 풍요는 얼마나 많이 소유했느냐뿐 아니라 무엇을 귀하게 바라볼 줄 아느냐에도 달려 있다. 따뜻한 차 한 잔, 오래된 벗의 안부, 가족과 나누는 저녁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너무 평범해서 지나쳤던 것들이 어느 순간 삶의 중심으로 돌아온다. 작은 것을 귀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작은 삶을 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함에 가려졌던 존재의 깊이를 발견하는 일이다. 거대한 성공보다 이런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을 완성한다. 동양의 오래된 사유는 삶을 채우는 것만큼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주역』의 세계에는 고정된 완성이 없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르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 노자는 비어 있기 때문에 그릇이 쓰임을 얻는다고 했다. 우리는 평생 채우는 법을 배우지만 인생 후반에는 비우는 법도 배워야 한다. 비운다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내 정말 소중한 것이 머물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스토아 철학 역시 인간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세월과 늙음, 이별과 죽음은 의지만으로 붙잡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지는 우리의 몫이다. 늙음을 막을 수 없다면 잘 늙는 법을 배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붙잡을 수 없다면 함께 있는 동안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다. 삶의 지혜란 모든 것을 뜻대로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것과 화해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힘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남은 시간이 줄어드는 일인 동시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보다 그 길에서 누구의 손을 잡아주었는지,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누구와 나누었는지가 마음에 남는다. 사회는 성공을 높이로 측정하지만 삶의 품격은 깊이로 남는다. 지위와 소유는 사라져도 한 사람에게 건넨 따뜻함은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흰 머리와 주름도 단순히 젊음을 잃은 흔적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견뎌온 날과 사랑했던 사람, 울었던 밤과 다시 웃었던 아침이 새겨져 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시간이 쌓이는 일이지만 잘 늙는다는 것은 그 시간 속에 온유와 감사가 깊어지는 일이다. 육체를 늙게 하는 것은 시간이지만 마음을 메마르게 하는 것은 세월보다 사랑과 감사의 감각을 잃어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는 우연을 지나 오늘이라는 하루에 도착했다. 지금 숨 쉬고 걸을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외로운 마음에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내일을 준비하느라 오늘을 지나친다. 더 좋은 날이 오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삶은 언제나 오늘의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도착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도 삶을 어둡게 만드는 일만은 아니다. 끝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을 더욱 선명하게 한다. 영원하지 않기에 한 사람의 손이 귀하고, 다시 오지 않을 하루이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죽음에 대한 자각은 삶의 허무가 아니라 사랑을 미루지 말라는 요청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인생 후반에 필요한 것은 더 움켜쥐는 손이 아니라 조금씩 펼쳐지는 손인지 모른다. 비교 대신 존중을, 소유 대신 나눔을, 불안 대신 신뢰를 선택하는 일이다. 없는 것을 헤아리느라 남은 생을 보내기보다 이미 내 곁에 와 있는 사람과 생명을 깊이 바라보는 것이다. 밤이 깊어 다시 별을 올려다본다. 우주는 여전히 크고 나는 여전히 작다. 그러나 작다는 것이 하찮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등불 하나가 어둠을 밝히듯 한 사람의 온기가 다른 사람의 생을 따뜻하게 할 수 있다.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위대한 일은 우주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이 되어주는 일인지 모른다.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어쩌면 단순하다.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했는가. 얼마나 앞서갔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걸었는가. 세상의 모든 것을 갖지는 못했어도 내게 온 사람을 사랑했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살아냈으며, 내 곁의 작은 생명을 고마워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가을은 그렇게 묻는다. 이제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끝내 무엇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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