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몇 권 대출하려 시립도서관에 들어가다가 입구에 세워진 홍보게시판의 글씨에 시선이 갔습니다. ‘읽고 쓰기 좋은 가을’가을을 표현하는 다른 어떤 말보다 절묘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여름처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한더위는 사람이 집중력을 가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더위 때문에 게을러진 신체는 책읽기를 만만치 않은 노동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 갑자기 아침저녁으로 기온은 서늘하고 풀벌레 소리도 은은하게 배경음악으로 깔리면 휘영청 밝은 달을 두고 잠을 자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도 들어 슬며시 잠자리에서 일어나 서가의 책을 한 권 뽑아들게 됩니다. 그렇게 가을이 시작됩니다.흔히들 가을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 하며 덧붙여 책 읽기를 권장합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것이 독서와 어떤 상관관계에 놓일까요? 가을이 되어 날씨가 선선해지면 여름 더위에 입맛을 잃었던 말도 식성이 좋아져서 살이 적당히 오르고 털에 윤기가 흐른답니다. 거기에다 선선한 날씨가 과거의 중요한 무기인 활의 접착력을 높이고 시위의 탄성도 팽팽해져 화살의 사정거리가 길어지니 중국 북방의 오랑캐들이 중원을 치고 내려오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더구나 가을걷이가 끝난 남쪽은 겨울을 날 식량을 충분히 비축하고 있으니 오랑캐들은 이때를 기다려 만리장성을 넘어와 식량을 약탈합니다. 알고 보니 천고마비라는 말은 독서와 아무 관련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오랑캐의 침략에 대비할 때라는 걸 경고하는 말이었군요. 이런 경우 ‘천고마비’가 아니라 ‘등화가친(燈火可親 : 등불을 켜고 책을 읽다)’이 더 어울리겠지요. 책에서 얻은 지식입니다. 책읽기를 권하는 명언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사르트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지난 세기 동안의 가장 훌륭한 사람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데카르트)’ 따위의 서양 명언도 있지만 ‘개권유익(開卷有益 : 책을 펼쳐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유익하다),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篇 義自見 : 어려운 책도 백 번 되풀이 해 읽으면 저절로 그 뜻을 알게 된다)’처럼 동양의 명구도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독서는 사람의 정신력을 배양하고 마음을 다스리기에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해왔습니다.    또, 읽은 내용을 반추하고 사색해 글로 정리해 써서 자기것으로 내면화하기까지를 일련의 독서과정이라 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은 정보나 지식을 얻는 통로로 종이책보다 전자책이나 모바일 기기를 더 선호하고, 종이책을 읽기를 어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자기의 생각과 감상을 글로 쓰는 것을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듣고 읽고 쓰기는 의사소통의 필요충분조건입니다.사람의 내면을 표백(表白)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편지나 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의 기본 소양을 갖추게 하는 초등교육에서 일기쓰기는 빠지지 않는 항목입니다. 어린 시절에 방학 숙제로 부과된 일기쓰기를 게을리 하다가 개학 직전에 몰아서 쓴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부지런히 쓰던 일기를 학창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손에서 놓게 된 이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로 글쓰기의 어려움에 핑계를 대는 것도 일반적이고요. 잘 쓰려고 고민할수록 글쓰기는 더 어려운 일이 되고 맙니다. 어린 아이의 일기는 자기를 돋보이려는 글쓰기 기교를 부리지 않아 순수함이 있습니다. 충무공의 ‘난중일기’가 전쟁 중의 나날을 어떤 꾸밈도 없는 사실 그대로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진술함으로써 읽는이의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록문학으로서의 사료적 가치도 높이 평가됩니다.    조선 후기 문인인 심노숭은 글쓰기 병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자신의 일상생활을 사소한 것까지 기록하는 결벽에 가까운 정리벽과 기록벽을 가졌습니다. 비록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미관말직으로 살다갔지만 다른 조선시대 문인들의 우아하고 가식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문집들과 달리 자신의 치부조차 꾸미지 않고 드러내고, 정적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도 가림 없이 기록한데다 당대 지배계층의 일그러진 문화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가 남긴 ‘자저실기’는 점잔을 떨며 가식적이기까지 한 역사적 기록이 담지 못하는 당대의 사회상과 선비의 일상사를 보여주며 소박하지만 꾸밈없는 글이 좋은 글의 첫 조건임을 증명합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가 스스로 진화하려는 조짐을 걱정하며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이 맞닥뜨릴 위험을 두려워하는 학자도 없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을 겪으며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수많은 해석과 주석이 달린 성경과 불경의 방대한 내용도 AI는 몇십 분만에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두 고전의 기본 정신을 유추하고 해설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AI는 입력된 자료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밍이 진행되는데 그 자료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인류라는 집단지성이 읽고 쓴 내용이라는 점은 간과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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