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떡볶이를 먹으면 입안이 불타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며 눈물까지 핑 돕니다. 다 먹고 나면 한동안 매운 건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어느새 그 가게를 다시 찾습니다. 영화관에서 펑펑 울고 나와서도 좋은 영화였다고 말하고, 다음에 또 슬픈 영화를 예매합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사서 고생하는 셈이니,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입니다.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입니다. 고추에 든 캡사이신은 혀에서 열을 느끼는 신경을 자극합니다. 혀를 데지도 않았는데 뇌는 입안에 불이 났다고 착각해 땀과 눈물을 쏟게 합니다. 흔히 듣는 설명은, 이 통증을 누르려고 뇌가 진통 물질을 내보내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입니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두고는 자꾸 먹다 보니 혀의 신경이 무뎌졌을 거라고 짐작하기도 합니다.그러나 연구해 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매운맛을 즐기는 사람도 아픔은 똑같이 느낍니다. 신경이 무뎌진 것이 아니라 화끈거리는 통증을 즐기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20억 명이 넘는 어른이 고추를 즐기는 데에는 사람에게만 있는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매운 음식에 흘리는 땀과 눈물, 무서운 장면에서 쿵쾅거리는 심장, 슬픈 영화를 보며 터뜨리는 울음을 즐기는 동물도 사람뿐입니다.심리학에서는 해가 없는 고통을 즐기는 이런 성향을 양성 마조히즘(benign masochism)이라고 부릅니다. 몸은 위험하다고 경보를 울리지만 머리는 안전하다는 것을 압니다. 속고 있는 몸을 한 발 물러나 바라볼 때 즐거움이 생긴다는 설명입니다. 슬픈 영화를 보며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것도 화면 속 일이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 시골의 개와 돼지는 사람이 남긴 매운 음식을 늘 먹지만 끝내 그 맛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머리가 있어야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뒤집힙니다.고통에는 쓸모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프면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리고, 덩달아 다른 감각까지 선명해집니다. 한 실험에서 얼음물에 손을 담가 통증을 견딘 사람들은 뒤이어 맛본 음식을 더 진하고 맛있게 느꼈습니다. 떡볶이를 먹다가 집어 먹는 삶은 달걀이 유독 고소한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불난 입에 들이켠 물 한 모금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물로 기억되듯, 괴로움이 클수록 통증이 가라앉을 때의 안도감도 큽니다. 억지로 떠안은 시련이 아니라 스스로 고른 안전한 고통 속에서 무뎌졌던 삶의 감각을 되찾습니다.양성 마조히즘 연구에서 사람들이 가장 즐긴다고 꼽은 경험은 매운맛도 공포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이 흐를 만큼 몸을 움직일 때, 그리고 끝나고 녹초가 되었을 때의 느낌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롤러코스터를 물었을 때도 59%가 이보다 더 무서우면 못 타겠다 싶은 선 바로 아래의 것을 골랐습니다. 결국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려면 마음의 여유와 태도가 중요합니다. 평소 땀 흘리는 운동이나 낯선 도전을 피해 왔다면, 안전하게 감당할 수 있는 한계 바로 아래까지 한 번쯤 가 보면 좋겠습니다.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뒤집히는 순간은 늘 그 한계 언저리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