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공동체의 가치를 동학에서 찾으려는 시민들의 연구와 성찰이 경주에서 공유됐다.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인문도시사업단(단장 홍은숙 외국어교육부 부교수)은 지난달 29일 동국대 WISE캠퍼스 100주년기념관에서 ‘시민의 일상에서 피어나는 동학, 인문도시 경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를 주제로 동학시민학술제를 개최했다.이번 학술제는 제21회 인문주간을 맞아 마련된 시민 참여형 인문 프로그램의 하나로, 2025년 3월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이어온 동학 콜로키움과 경주학 특강의 성과를 한데 모은 자리였다. 동학을 학자나 전문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시민의 삶과 연결하고 경주에서 태동한 동학의 역사적·철학적 가치를 오늘의 관점에서 재조명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이날 학술제에서는 동학의 창시 배경과 최제우의 종교 체험, 해월 최시형의 역사적 의미, 동학의 생명윤리와 실천적 계승 등 다양한 주제의 발표가 이어졌다.김영진 동국대 WISE캠퍼스 불교학부 교수는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모심의 철학’을 주제로 발표했다.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21자 주문을 분석하고 시천주의 의미를 통해 동학의 핵심 사상인 모심의 철학을 살폈다. 특히 시천주의 행위에서 종교적 인간이 탄생하고 모심의 철학이 형성되는 과정을 짚었다.김성대 신라문화동인회 부회장은 ‘경주가 잊지 않아야 할 해월 최시형’을 주제로 해월의 생애와 경주의 역사적 책무를 조명했다. 해월을 잊지 않겠다는 포항시 사회문화 단체의 노력과 2027년 해월 탄신 200주년을 앞두고 경주시가 생가터 매입과 복원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을 소개하며, "생가 복원에 이어 주변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해 시민과 관광객이 동학의 역사를 기억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경북신문 문화부 선애경 기자는 2011년 경주를 비롯해 정읍과 보은, 공주, 서울 등 전국 동학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취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별 동학 계승 양상을 소개했다. 각 지역이 시민의 일상과 지역 정체성 속에 동학을 담아내고 민간단체와 주민들이 역사적 흔적을 지켜온 사례를 전했다. 이어 "경주 역시 동학의 발상지를 넘어 그 가치를 오늘의 삶에서 구현하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밖에도 박미혜 해오름 교육문화개발원장은 '시대적 모순과 동학의 창시 배경'을 주제로 최제우의 가문적 배경과 사회적 위치는 동학의 인간관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했다. "동학은 개인의 종교적 깨달음에서 출발해 조선 후기 민중의 고통과 신분제 모순에 응답하는 사상으로 발전했으며 최제우에 대한 문중의 역사적 평가는 족보의 계승과 당대의 명예, 근대 이후의 재평가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현실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는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과 비인간 존재'를 주제로,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과 비인간 존재와의 공존 가능성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실천하는 데서 공존의 윤리를 찾을 수 있다"며 동학의 경물 사상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의미를 설명했다.박택호 포항 동대해문화연구소 이사는 '수운과 해월의 만남'을 주제로, 해월이 35년간의 피신 생활 속에서도 전국 62곳에 포덕의 발자취를 남겼다는 점을 소개했다. "금곡에서 용담정으로 이어지는 해월 순례길 등 자발적인 동학 순례 문화를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확장한다면 지역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지는 새로운 관광 모델로 발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이남희 경주동학역사문화사업회 운영이사는 '동학 정신의 실천적 계승'을 주제로, '왜 하필 동학인가' 하는 물음을 통해 동학과 동학 아닌 것의 차이를 구별해 동학하는 삶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자각으로 나아가길 권유하면서 "동학하는 삶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청년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낼 새로운 동학 사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이들 발표에 이어 황대욱 신경주대학교 교수, 주 미 경주시의회 의원, 최천집 동국대 WISE캠퍼스 교수, 김혜경 일월문화원장 등이 참여한 종합토론도 진행됐다. 참석자들은 동학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지역의 문화자산으로 확장하기 위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이번 학술제는 동학을 과거의 종교·사상이나 역사적 사건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간 존중과 생명 존중, 공동체적 연대라는 현재적 가치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특히 시민들이 직접 공부하고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동학의 계승 주체를 전문가에서 시민으로 확장하고 착근시켰다는 데 의미가 있어 보인다.홍은숙 인문도시사업단장은 "이번 세미나 등은 인문학적 가치가 경주 시민의 삶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며 "시민과 함께 인문도시 경주의 풍요로운 공생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