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폭염속, 무더운 날이었다, 석빙고 북편, 월성 해자 발굴 현장, 복원 사업에 쓰일 제1차로 헌증된 신라 월성 돌덩어리들이 오색 비단 실에 곱게 단장되어 얌전하게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2015년 7월31일 오후, 경주는 잔치 분위기였다. (그렇치 않겠는가!) 아무리 입이 없는 돌덩어리들이지만 아름다운 옛집, 궁궐터에서 도굴된 채 쫓겨나 낯선 곳, 담장으로, 축대로, 빨랫돌로, 장대석으로 시내에서 관공서에서 이름도 없이 살다가 이제 옛 터전으로, 귀순용사들처럼 당당하게 돌아 왔으니, 돌의 마음인들 기쁘지 않겠는가. 그 날이 언제 인지는 돌들도 아마 잘 모르리라. 일제 강점기 시대인지 조선시대인지… . 아름다운 월성 궁터에서 도굴꾼들의 손에, 파헤처져 깊은 밤 다운타운 어디론가 운반되어 형편없는 대접속에서 보낸 날들을. "아아, 황당한 슬픔 속 그날을 어찌 잊겠는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귀환된 월성 돌덩이들도 광복을 맞은 들뜬 기분일 것이다. 그날, 제1차로 접수된 30여점의 귀환된 돌들의 면면을 살펴 본다. 경주시 (구)경주시청, 경주 문화원, 경주 향교, 서악선원, 남산 3길 황경환씨, 흥륜사 주지, 북성로 김종년씨, 포석로 오현환씨, 월성해자 복원석재들… . 장대석, 탑재, 방형초석, 주초석, 계단석들, 시민들의 정성으로 모아진 귀중한 유물들은 왕궁 복원시 금성 세초로 사용될 아름다운 문화재들, 하나하나에 지난 역사가 숨쉬고 있다. 경주시는 시내에 약 4800여점의 신라 석재가 아직도 주택가나, 관공건물이나, 다운타운 지하 어디에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2025년 신라왕경복원 때 까지 단계별로 석재 헌증을 추진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경주 시민들의 더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는, 이번에 '1차로 헌정된 신라 월성 석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는, 석빙고 북편, 해자발굴현장을 잘 찾는다.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발길이 가는 이유는 뭘까?  품격이 있는 돌들의 표정은 볼수록 내게 따뜻하게, 의미심장하게 닥아 온다.  그 돌들은 어쩌면 보았을지도 모른다. 신라의 흥망성쇠, 찬란한 역사의 그 순간들을, 돌덩이들의 빛깔도 얼굴도 다양하다. 첫눈에도 보통 돌이 아니다. 석빙고 북편 마당에 가면, 귀환된 신라왕궁 돌덩이들이 저희들끼리 고통스러웠던 과거, 추억들을 주고 받는 얘기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얘, 너가 원래 있었던 곳은 월성 어디니?" "나도 잘 몰라" "넌, 누가 언제 경주 향교 자리로 다리고 갔지? "몰라" "너는 선덕여왕 얼굴을 보았니?" "아니" "황룡사 9층탑 불타는 것, 직접 보았니?" "아니… "  아, 들릴 것만 같은 저 돌들의 말씀. 어느 달 밝은 밤이 오면, 나는 다시 갈 것이다. 석빙고 북편 발굴현장으로.가서 월성의 무너진 장대석과 월성해자방형초석들의 얘기를 밤 깊도록 듣고 싶다.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시인  김 성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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