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5일 광복 70주년 경축기념행사가 중앙정부를 비롯하여 범국가적 행사로 열렸다. 필자는 이번 행사를 지켜보면서 '1945년 8월15일 광복 이전의 암담했던 조선의 역사를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다시 조명하고 있을까?'라는 역사성에 강한 의구심이 일어났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위해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나갔다가 위화도에서 군사를 되돌려 개경을 점령함으로써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고조선을 계승한다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조선의 건국조 태조 이성계는 7년 왕조로 끝을 맺고 건국할 때 공을 세운 방원을 젖히고 계비인 강 씨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방원은 방석을 옹호하는 정도전 등을 죽이고 세자 방석을 폐목(廢默)시켰다.  이에 조선 태조 이성계는 방원이 벌린 두 차례의 왕자의 난에 울분하여 왕위를 정종(방과)에게 물려주고 함흥으로 가버린 뒤 태종 방원이 그 아버지의 노여움을 풀고자 함흥으로 여러 번 사신을 보내 환궁을 권했으나 이성계는 그 사신들을 죽이거나 잡아 가두고 보내지 않았으니 이때 한번가면 다시는 못 온다는 '함흥차사'라는 신조어가 그때 생겼고, 태조 이성계의 아들들이 2번에 걸쳐 벌린 난을 조선 초기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의 이씨 왕조는 그 후손들로 이어져 27대 순종까지 518년 동안 지속 되다가 1910년 일본의 무력에 의한 한일합방으로 조선은 멸망했다. 이것이 대충 돌아본 조선의 개국과 멸망의 시작과 끝의 역사다. 다시 오늘 우리는 8·15 광복 70주년을 되돌아보면서 518년의 이 역사에서 철저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몇몇 대목들이 있다.  얼마 전에 끝난 KBS 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은 1592년에서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전란 사로써 당시 영의정 유성룡은 눈물과 회환으로 전란의 원인과 정황 그리고 참혹하게 겪어야 하는 백성들의 비참했던 시대상황을 상세히 기록한 역사 기록서다.  징비란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대비 한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조선왕조 518년을 평가하는 학자들은 조선의 14대 선조와 그의 손자 16대 인조를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임금으로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대 전란 속에 있으면서도 탐관오리들의 동인, 서인, 남인, 북인, 소북, 대북, 노론, 소론 하면서 일어났던 첨예한 당파 싸움은 극에 달했으며 그러한 결과의 대표적 예가 만고충신 이순신을 역적으로 몰아 귀양살이를 보낸 눈물 나는 역사가 그 증거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의 15년 집권을 거쳐 선조의 손자 인조(조선왕조 16대)는 1636년 12월28일 청나라의 침공으로 천혜의 요새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으나 이듬해인 1637년 2월 24일 결국 항복하고 당 태종 앞에 나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하였으니 청나라 황제는 머리를 땅에 박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서 수번을 반복하게 해서 인조의 이마에 유혈이 낭자했던 치욕의 과거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래서 이씨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라는 군신의 예를 맺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로부터 청나라의 조공국 조선의 역사는 258년간 지속되다가 일본이 1894년에 일으킨 청일전쟁에서 1895년 전승국이 되자 그해 4월17일 일본의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청나라 전권대신 이홍장(李鴻章)이 시모노세키(下關)조약에서 청나라는 조선의 지배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청일 강화 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조선은 청나라의 조공 국이라는 지배권에서 벗어나 자유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15년 뒤인 1910년 일본 군국주의는 무력으로 한일합방을 감행함으로써 이조 518년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게 되었고 대한민국은 다시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태평양전쟁에서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9일 나가사키에 2번에 걸친 미국의 원자탄 폭격을 받고 1945년 8월15일 일본은 항복을 했고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게 되었다. 이것이 올해로 70주년이 되는 8·15해방 광복절의 원인과 결과다.  역사는 돌고 돌아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여기 이렇게 우뚝 서 있는 것은 과거의 결과요 또 미래의 대한민국은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국가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대한 지나친 원한과 미운 마음들을 내려놓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유성룡의 징비록에서도 말했듯이 과거는 똑똑히 기억하고 징비하고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으며 미래를 대비하는 좀 더 성숙된 우리 국민들의 넓은 도량이 있을 때 훨씬 더 발전된 대한민국, 하나로 통일된 대한민국의 역사가 다시 시작 될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리고 민족의 대서사시를 모르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던 철학자이자 어느 역사가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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