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을 읽다가 경주 박물관에서 '우리 집 보물' 기획전시회가 있다는걸 알았다. "재밌는 기획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 어디에서 하지? 꼭 봐야지"다음 날 나는 도우미의 안내를 받고 박물관 '미술관'을 들어섰다. '경주 괘릉리 농부 김씨의 일기'라는 제목의 '우리 집 보물'기획전 현판이 보였다. 농부 김진환씨의 일기장은 한마디로 놀라웠다. 53년 동안 쓴 일기라니!  1963년 (28살)1월1일부터 시작된, 무려 19,216일간의 개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일기장이다. 일주일 ,아니 한 달, 아니 일 년도 쓰기 힘든 일기장을 무려 53년간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적은 일기지만 소중한 우리시대, 경주의 삶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어서 더욱 필자에게는 울림이 컸다.  김씨는 일기장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그리고 나 자신의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라고. 사람들은 왜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 하는 걸까? 김씨는 또 고백하고 있다 "일기는 거짓없는 내 자신의 반성문이고, 내 일상의 계획이고, 과거를 통해 나는 인생을 배운다"라고. 그렇다. 일기는 한 사람의 영혼의 슬로우 비데오다  960년대, 그 시대, 경주의 물가를 알 수 있는 1967년 무렵, 경주 '불국장날' 일기를 보자. "쌀 3대를 판돈 276원으로 150원하는 아내 화장품을 사다주었다. 기뻤다.장날에 운동화 한 켤레 샀다. 100원, 양 한 마리 1100원" "부모님께 동의를 구하고 친구의 중고 라디오를 1350원에 샀어. 라디오를 건네 받았을 때 그 기쁨을 우째 말로 다하겠노, 다른 집에 새거 보다 내 중고가 낫지. 저녁 묵자 말자 내방에서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을 들었지, 아무꺼나 다 재미있대 라디오 들으며 잠드는 재미는 거의 매일이지". 잔칫날 모습, 소 잃어버린 날의 슬픔, 모내기 날 풍경, 불국사 장날 풍경, 감산사 불상 이야기가 보인다.  그리고 과거의 손때가 묻어 있는 물건들… 카메라, 금성 라디오, 주판, 아버지 안경, 신라문화제 가장행렬 모습 등등 괘릉에서의 한평생이 녹아있는 분신들이 보인다. 남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본인에게는 소중한 '우리집 보물'들이다.  우리 모두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쓰자. 내 아이들에게도 일기를 쓰게 하자. 삶이 풍요로워질것이다. 필자에게도 '우리 집 보물'이 하나 있다. 삼십 년전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남긴 소중한 일기장이다.  삐뚤 빼뚤한 글씨로 써내려간 어머님의 일기장, 어머님의 슬픔과 기쁨이 담긴, 막내의 과거가 진솔하게 담겨있는 우리 집 가보 제1호. 오늘 밤엔 삐뚤빼뚤한 어머님의 일기장 속으로 보고 싶은 어머님을 만나러 가야겠다.동리목월문예장작대학 교수·시인  김 성 춘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