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 8.26일 자 '조선일보'를 보다가 나는 한 기사에 눈이 꽂혔다. "한국 고고학의 대부 김정기 박사, 85세로 별세" 김정기 박사! 경주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가진 분, 박정희 대통령께서 그렇게 아끼고 신임했다는 고고학자 김정기 박사. 아시다시피 그의 이력은 바로 한국 고고학계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70년대 우리 손으로 유적 발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그 시대, 그의 손을 거치지않은 굵직굵직한 유적 발굴은 없다. 천마총, 황남대총, 황룡사지, 안압지, 월성 해자, 감은사지 발굴,등등 오늘 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경주지역 대부분의 유적 발굴은 그의 손을 거친 유적들이다. 경주는 고인에게 발굴복, 유물복이란 큰 선물 모두를 안겨준 셈이다. 경주가 잊어서는 안되는 고마운 분, 김정기 박사. 김박사의 일화중, 황남대총 발굴 당시의 일화가 재밌다 황남대총 발굴을 지시하는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섣불리 대형 고분을 발굴하기보다 근처의 작은 고분부터 먼저 파보는 게 좋겠다"고 건의를 해서 1973년 '천마총'을 먼저 발굴하게 된 일화는 유명하다.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를 찾을 때마다 '김박사 어디 계시느냐?' '김박사를 부르라'하셨다고 한다. 김정기박사는 '천마총'의 '천마도'가 발굴 됐을 때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천마도가 발굴됐을 땐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 했다.손대는 순간 가루가 될지도 모를 그 천마도를 내가 무덤 바깥으로 들어냈다" "그것은 책임 져야 할 어려운 일은, 내가 직접 하는 게 지휘자의 의무이기 때문이었다"라고. 얼마나 지도자다운 믿음직한 말씀인가. 故 김정기 박사를 향한 후학들의 추모 글은 아름답게 이어진다 "김박사는 한결같은 야전군 사령관이었죠. 평생 발굴 현장에 있으면서 고고학자로써의 마음 가짐을 몸소 보여 주셨어요"(조유전 전 국립문화재 연구소장) "그분에게 발굴 현장은 신성한 곳이었습니다. 조그만 토기라도 한 손으로 집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어요. "감히 유물을 함부로 대하느냐, 정중하게 두 손으로 잡으라"고 하셨어요" (정계옥 전 국립문화재 연구소 미술 문화재 연구 실장) "발굴장에 어둠이 내리면 곱창이나 순대 회식으로 피로를 풀어주셨지요. 우리 학계의 진정한 거목 이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에 이어지는 후학들의 추모 글은  감동적이다. 사람은 죽고 난후에 그 사람에 대한 제대로의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인은 인덕이 많고, 그것은 모두 생전에 본인이 쌓은 덕이 아닐 수 없다. 아, 김정기 박사, 경주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필자는 한번도 김박사님을 뵌 적도 없고 강의를 들은 적도 없지만, 김 박사님이 아직도 경주에 살아 계실 것만 같고, 월성 발굴 현장에도 금방 나타나실 것만 같다.  경주 시내 황성동 골목이나, 인왕동이나 노동동 어느 골목 길에서 문득 만날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김정기 박사! "나는 사람들과 만나 섞여 있는 것 보다 땅 파는 게 더 좋았다"라고 한 진정한 고고학자 故 김정기 박사, 경주시민의 한사람으로 박사님의 명복을 빈다. *후학들의 말씀 및 일부 내용은 8월26일자 '조선일보' 기사 인용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시인  김 성 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