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왕릉위에 대형 태극기가 활짝 펼쳐졌다. 아니 태극기가 왕릉의 몸을 휘 덮었다고 할까. 왕릉과 태극기의 이벤트, 정말 좋았다. 맑고 푸른 경주의 초가을 하늘 아래.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축제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들었다. 왕릉과 태극기! '신라 임금 이발 하는 날!' 누가 낸 아이디어였을까? 독특한 아이디어다. 경주에서만 가능한,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멋진 '왕릉 퍼포먼스'가 아닌가. 무덤속의 임금님께서도 벌초를 해서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좋아 하실 것만 같다. 지난 2015년 9월19일 오후, 경주 동부사적지 들판에서 이름하여 처음으로 '신라 임금 이발하는 날' 이벤트가 열렸다. 신라 임금님들께 추석을 맞이하여 벌초를 한다는 '고유제'를 올리고, 손에 손에 가위를 든 시민들과 꼬마들이 함께 임금님의 왕릉에 벌초를 시작한다. '벌초 최다 인원 한국기록 기네스북 도전'이다. 필자도 경주에 살면서 가끔 몇 명의 인부들이 왕릉을 벌초하는 풍경을 가끔 보긴 했다. 그때마다 참 독특한 벌초 풍경이다 생각을 하며 한 참을 서서 구경을 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벌초 최다 인원 한국기록 도전'이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왕릉 벌초 풍경' 사진촬영대회가 최초로 인기리에 열리고, 최다벌초 도전이 성공하고, 기네스북 인증서가 그날, 최양식 시장께 전달도 됐다. 엄마와 함께 왕릉을 벌초한 꼬마들에겐 정말 멋진 어린 날의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군중 속엔 외국인들의 호기심어린 얼굴들도 보여 행사가 더욱 풍성해 보였다. 고도 경주, 도시 한 가운데 솟아있는 여자의 유방 같은 부드러운 線, 왕릉들의 이미지는 경주의 랜드 마크다. 수수께끼를 간직한 수많은 고분들은, 경주를 경주답고 사랑스런 도시로 만드는 보석 같은 존재다. 경주시는 '봉황대 뮤직 스퀘어'도 좋지만 이번처럼 '동부사적지'의 고분들, 노동동 노서동 고분들, 선덕여왕 릉 등을 이용하는 '왕릉 이벤트'를 계속해서 체계적이고 창의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하리라. '신라 임금 이발하는 날'행사는 내년부터는 봄, 가을 2회로 개최할 예정이라니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그날 임금님의 영혼을 달래는 멋진 '살풀이 춤'이나 국악 연주는 왜 없었을까? (경주에도 훌륭한 국악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날, 무용과 음악이 곁들여졌다면 행사가 금상첨화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내년부터 '임금님 이발하는 날' 행사가 좀 더 종합적인 검토 속에서 더 감동적인 경주 최대의 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모든 것이 첫 술에 배부를 수야 없다. '동부사적지'는 가까이 월성과 첨성대, 그리고 계림과 동궁 월지를 끼고 있는, 경주에서도 가장  신라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신비스런 현장이다. 이곳을 무대로 삼아 봄이나 가을쯤 세계적인 예술문화 축제행사를 가진다면 그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상상만해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경주의 가을은 아름답다. 폐사지를 불어오는 바람처럼. 나는 경주의 가을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내일은 해질 무렵,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남천 들길을 아내와 함께 걸어봐야지.  김성춘 시인· 동리목월문예창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