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황금들녘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 석양이 내려앉으면 가을색이 더욱 짙어진다. 고개를 숙인 누런 벼들의 물결이 일렁일 때면 영락없이 큰 손님이 찾아든다. 한가위다. 말만 들어도 풍성한 우리의 최대 명절 추석(秋夕)과 더불어 이제 곧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될 것이다. 자녀의 귀성 행렬이 대부분이겠지만 부모의 역귀성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이러한 신풍속이 앞으로는 더욱 자연스럽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귀성뿐만 아니라 제례(祭禮)문화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형편에 맞게 간소화하는 것은 물론 차례를 지내는 곳도 때에 따라 바꾸는 집안도 생겨났다. 이 때문에 몇 해 전 열린 전통상제례(傳統喪祭禮) 학술대회는 많은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제사(忌祭祀)와 차례(茶禮)를 모시는 방법은 권장할 만했다. 형제가 여럿일 경우 기제사는 장남이 모시고 차례는 나머지 형제들이 돌아가며 모시는 윤회봉사(輪回奉祀)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 집도 예전에는 장남인 내가 모든 기제사와 차례를 도맡았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고향집을 지키는 동생이 설과 추석차례를 모셔 이제는 명절 때 고향을 찾아가는 기회가 만들어졌다. 우리 형제의 우애는 남달리 좋았지만 윤회봉사를 통해 서로의 처지를 보다 잘 이해하면서 명절을 더욱 즐겁게 맞이하게 되었다. 제수준비 등으로 다툼이 잦은 형제라면 윤회봉사를 실행에 옮겼으면 좋겠다. 역지사지의 입장이 되어보면 차례 준비로 수고한 맏동서나 윤회봉사 당번에게 위로의 말과 감사의 표현이 절로 나올 것이고, 관계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불행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명절도 마찬가지다. 작은 서운함이 쌓여서 큰 불만이 되고 그것이 터지면 행복해야 할 명절이 돌이킬 수 없는 갈등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마음의 안전이 전제되지 않으면 행복은 기대할 수 없다.  이번 명절은 서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명절이 아니라 어루만져줄 수 있는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생각으로 수고한 사람을 이해하고 위로와 격려가 가득한 이로운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을 돕고 이롭게 하는 일은 가진 자 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 없이도 7가지의 보시를 할 수 있다는 무재칠시(無財七施)의 가르침만 알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얼굴에 화색을 띠고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하는 화안시(和顔施), 좋은 말로 얼마든지 베풀 수 있는 언시(言施), 따뜻한 마음을 주는 심시(心施), 호의를 담은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안시(眼施), 남의 짐을 들어주거나 일을 돕는 신시(身施), 때와 장소에 맞게 자리를 양보하는 좌시(座施), 굳이 묻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알아서 거드는 찰시(察施)가 바로 그것이다.  외지에 나가 있어 고향을 찾는 일이 쉽지 않은 사람들은 전화로라도 서로에게 안부를 물어주고, 덕담을 나누어 준다면 명절이 힘들고 스트레스만 받게 하는 날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관계를 회복시켜주는 소중한 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 영 상  대구보건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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