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덕분에 기운도 더욱 차졌다. 밤으론 온기가 어느 때보다 그리워진다. 추위가 살갗을 긴장시킬 즈음이면 어릴 적 따스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나는 어릴 적 우리 집 재산 1호인 소를 돌보기 위해 저녁마다 쇠죽을 끓였다. 불을 열심히 피우면 쇠죽이 뭉긋하게 끓어오르고 냄새를 맡은 소는 긴 울음으로 재촉했다. 소를 배불리 먹이고 나면 불이 조금 남아있는 재를 담아 화롯불을 만들었다.  무쇠로 만든 화로의 가득한 온기는 우리 가족을 모이게 했다. 육남매는 할머니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구마와 가래떡을 구워 먹었다. 부족한 배는 할머니의 맛깔난 옛날이야기로 채웠다.  할머니는 화롯불을 다루는 전문가였다. 화로 주변을 다독이며 재를 눌러주면 뜨거운 온기는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놀라운 기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기술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춥지 않도록 불씨를 꺼트리지 말아야한다는 할머니의 간곡한 정성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 시절 가정마다 필수품이었던 화로는 언젠가부터 추억으로 남았다. 보일러와 각종 전열기가 대신하면서 할머니처럼 우리 곁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화로를 본뜬 상품이 나왔다. 좀 더 경제적이라는 장점을 업은 화목보일러가 생겨난 것이다. 인기를 얻으면서 사용하는 가정도 많이 늘어났다. 문제는 이와 관련한 화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목보일러 화재는 사용시기와 맞물려 늦가을부터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주로 보일러 과열이나 가연성물질을 가까이 두어 불이 옮겨 붙거나 불티가 날리고 연통이 과열되면서 일어난다.  화목보일러는 가스나 기름보일러와 달리 자동온도조절장치 같은 안전장치가 없어 과열될 위험성이 높다.  오래 사용하면 연통내부에 그을음(타르)이 생성되는데 이러한 타르는 화기는 물론 연기가 배출되지 않아 그 부분이 불꽃과 만나게 되면 화재로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의가 요구된다.  먼저 기준에 적합한 보일러를 설치해야 한다. 연통은 스테인리스와 같은 불연재로하고 연통이 관통하는 벽체부분은 단열처리가 필요하다. 또한 연통 내부에 쌓인 그을음은 자주 청소해줘야 한다.  화목보일러 주변은 벽돌 같은 불연재로 경계를 두르고 목재와 같이 불에 잘 타는 물건은 가까이에 두지 말아야한다. 마지막으로 소화기나 물을 비치해 놓으면 만약의 화재에도 조기 진화할 수 있다.   전기장판이나 전열기 화재도 늘어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올해 3월에 발생한 인천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도 전기장판에서 발화되어 어린이 3명을 포함하여 5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전기장판을 구매할 때 안전인증마크를 꼭 확인하고 사용자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용 시에는 장판의 바닥면과 윗면을 확인하고, 전원코드가 꽂히는 쪽에 머리를 두는 게 좋다. 과열상태가 되지 않도록 온도조절기를 적절히 설정하자. 담요를 덮어둔 채 자리를 비우게 되면 온도 상승이 급격해져서 화재위험이 높아진다. 집을 비울 때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반드시 전원을 꺼야한다.  화재는 누군가 미리 예측하고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예방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긴긴 겨울밤, 새벽까지 불씨를 지켜내기 위해 화로의 이모저모를 살피셨던 할머니의 일상처럼 안전도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정성이 지켜낸다. 최 영 상  대구보건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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