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언론사 퇴직 후에 왜 아무 자리에도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런 질문을 자주 받곤 했다. 연봉이 꾀 높은 '장'자리 하나쯤 차지할 수도 있을 텐데 왜 그러느냐는 뉘앙스를 묻히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바 아니다. (실제 그런 기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순이 넘도록 생업으로서의 일을 했으니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한다"거나 "이제 선비로만 살고 싶다"고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사실 언론사 퇴임 후, 최소한 5년까지는 반드시 지키기로 한 '나만의 불문율' 다섯 가지가 있었다. '아침부터 출근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 관계 외의 글은 쓰지 않는다', '현역(권력층)에게는 찾아가거나 먼저 전화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후배들의 대접을 받지 않는다'는 것과 이성(여성)에 대한 금기 사항 등이 그것들이었다.  전업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5년을 넘기다 보니 그래도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벼슬이나 감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높은 자리를 좇는 모습이다. 권력의 속성이 그렇듯이, 그런 사람들은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공통분모인 것 같다.  하지만 성취감 이후가 문제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개 물러날 때를 내다보지 않는 듯하며, '추락의 섭리'도 모르는 듯하다. 아니라면, 내다보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런 마음의 눈을 애써 가리고 있을 것이다.   '권력은 달아오른 난롯불 같다'고 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자신이 타버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위에 떨게 되기 때문이다. 그게 권력의 함정이요 모순인지도 모른다. 타지 않으면서 춥지도 않으려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상책이라는 점은 말할 나위 없으나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권력 구조와 그 속성이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닐까 한다. 물러날 때를 내다보지 않고 '추락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는 '막무가내'식 권력 추구엔 분명 문제가 있다.  남의 허물만 탓하고 자신의 허물은 애써 감추려는 사람들, 권력이라는 난롯불에 마냥 가까이 다가가려는 자세 역시 그렇다. 더구나 그런 사람들끼리 다투는가 하면, 그 반대편 사람들과도 수시로 부딪치기 때문에 세상은 어지럽고 시끄러울 수밖에 없어진다.  정치인들이 나라를 움직이는 원동력인지도 회의적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선량'인 그들의 의해 이끌려 가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으키는 파행적인 분열과 갈등은 국민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급기야 하부구조를 극심한 분열로 몰고 가 갈등과 반목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간 세상에 분열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 정도가 문제다. 지난날 우리 사회는 분열됐더라도 수습할 수 있는 처방이 있지 않았나 싶다. 유교적 전통의식이 그것이며, 그 중심에는 언제나 '선비정신'이 완강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선비는 학식이 있으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사람, 어질고 순한 사람을 일컫는다. 아무튼 '풍류정신'에 뿌리를 둔 선비정신은 격이 높았다. 그윽한 정신세계에서 물질을 탐하지 않았으며, 권세에 연연하지 않았다. 양심과 지조를 지키고, 가난해도 체면을 알았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받들었다.  그러나 오늘의 세태는 아무래도 그런 '고결한 정신'과는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유교적인 전통에 모순이나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었겠지만, 그렇더라도 일반에까지 선비정신이 파고들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게 하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불러일으켰다.  일그러지고 뒤틀린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길, 서둘러 키워야 할 덕목은 바로 선비정신의 회복과 현대적 계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조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은 군자(君子)에게는 귀하게 되려고 하는 귀욕(貴慾)이 있고, 소인(小人)에겐 부자가 되고자 하는 부욕(富慾)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선비정신을 받들면서 다산이 말한 귀욕을 끊임없이 지향한다면 세상은 크게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부자가 되려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더욱이 이 두 가지를 다 손아귀에 넣으려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사람들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태 수 시인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