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리다. 남의 권세를 빌려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초(楚)나라 선왕(宣王) 때 소해휼(昭奚恤)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한(韓), 위(魏), 조(趙), 제(齊)나라 모두가 소해휼을 두려워했다한다. 선왕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북쪽의 여러 나라들이 모두 소해휼 재상을 두려워한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신하들 가운데 누구 하나 제대로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강일(江一)이 대답했다. 호랑이가 모든 짐승들을 잡아 먹이로 하다가 하루는 여우를 잡았다. 여우가 죽지 않으려고 말했다. "그대는 감히 나를 먹지 못할 것이다. 천제께서 나를 온갖 짐승의 우두머리로 삼았으니, 지금 나를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 호랑이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여우와 함께 갔다. 짐승들이 보고 모두 달아나기에 바빴다.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의 '초책(楚策)'에 나오는데, 강일이 초선왕에게 들려준 여우의 우화에서 '호가호위'가 유래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방자치를 발전시킨다는 명분으로 기초의회 폐지안을 한 때 발표하자 전국의 기초의회는 이구동성으로 "시대적 역행이다. 풀뿌리민주주의 근간을 흔든다"면서 일제히 반발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기초의회가 그동안 보여준 행태에 식상해 기초의회 폐지안에 공감하고 있는 여론도 상당하다. 기초의회 폐지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들의 대부분은 일반 시민들로 "기초의회가 국회나 광역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폐단과 악습을 답습하며 각종 못된 행동과 추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최근 경주시의회가 2016년도 예산안 논의 과정에서 벌어진 행태를 보면 상당수의 시민들이 왜 기초의회 폐지를 찬성하는지 그 단면이 잘 드러나 있다. 경주시의회가 신라왕경복원 원년을 맞아 천년고도 디지털 복원을 위한 예산 5억원을 비롯한 경주문화엑스포 상설공연으로 자리잡아 국내외 관광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플라잉' 예산 3억원 등을 재정위기를 이유로 전액 삭감시키더니 수년간 외유성 논란을 빚은 자신들의 국·내외 여비와 의장단 업무추진비는 원안대로 통과시켜버리는 등 '제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해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특히, 경주를 빛낸 한국 문단의 거목인 동리·목월문학관의 운영예산 전액을 삭감해버려 새해부터는 문학관이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게 하는 등 10년 가까이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자신들의 책임은 외면한 채 입맛에 맞지 않다는 속내는 감춘채 '예산심의 권한'을 남용해 버렸다. 시민들은 집행부 견제에는 기초의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구태정치를 답습하는 경주시의회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기 때문에 기초의회를 폐지하자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초의회에 대한 불신감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의회 의원 21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러한 방대한 예산과 행정업무를 시민들의 욕구와 부합하도록 판단하고, 견제하고, 의결하고, 감시할 수 있는 훈련된 전문인이 아니라는데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높다. 학력을 비롯한 경력, 전문성을 비롯한 합리적 사고력을 겸비해야 효과적인 시정을, 의원직을 수행할 수 있건만 현실적으로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시의회 무용론의 근본적 요인인 것이다. 지방의회의 폐단은 제도가 아닌 사람이다. 민주주의 발전은 중앙집권에서 갈수록 분권화, 지방자치화를 추구하고, 이는 정치·행정·경제적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기초의회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바로 제도가 아닌 사람의 문제임을 의원들이나 시민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시민을 등에 업은 시의원들의 '호가호위(狐假虎威)'는 분명 배척돼야 마땅할 것이다.
최 병 화 편집국장 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