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자 덕담(德談)이 넘쳐났다. 며칠이나 휴대전화 문자나 이메일의 대부분이 그런 메시지들이었다. 길지 않은 이 메시지들은 삭막해진 마음에 짜릿한 전율을 안겨주는 경우도 적잖았다.  몇 해 전부터의 현상이기는 하지만, 연하장이 현격히 줄어든 대신 문자메시지가 성행하는 것은 이 바람이 아날로그 세대에까지 거의 일반화됐다는 방증인 것 같다.  설령 상투화된 문장을 담은 경우라 하더라도 덕담은 많이 주고받을수록 좋은 미풍양속(美風良俗)이 아닐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덕담들은 들을 때도 좋지만, 그런 말을 할 때가 기분이 더욱 고조되기도 한다.  일찍이 사학자 최남선(崔南善)은 덕담이란 단순히 '그렇게 되십시오'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그렇게 되셨으니 고맙습니다'라는 언령관념(言靈觀念)이 배어 있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도 있지만, 분명 말에는 그렇게 되라고 하면 그렇게 되는 어떤 신비스런 힘이 들어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럴까. 새해 덕담 나누기는 지구촌의 공통적인 풍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민족이나 나라에 따라 그 뉘앙스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미국에서는 '해피 뉴 이어'가 대변하듯 행복 추구가 주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쿵시화차이(恭喜發財)'처럼 재물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배어있는가 하면, 일본에선 '새해가 시작되니 축하합니다'라는 인사가 주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덕담에 복(福)을 많이 받으라는 말이 주류인 것 같다. '복'이라는 말에는 재물, 출세, 자식, 배우자에 대한 복 등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게다가 이 덕담에는 '복'이라는 추상성 뒤에 구체적인 덕목이 보태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득남, 건강, 치부, 승진 등 상대방의 처지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세태의 변화와 덕담이 맞물리고 있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과거 한동안은 '부자 되세요'가 회자(膾炙)돼 우리의 가치관에도 물질적 풍요가 주요 미덕으로 자리매김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이 가치관은 중산층이 무너지고 절대빈곤층이 계속 늘어나는 가운데 정치권이나 일부 계층에서 수백억대의 돈이 오가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나 박탈감과도 무관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동안 바람을 일으켰던 이 덕담이 이젠 거의 꼬리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면, 날로 어려워지는 경제 사정과 서민들의 얇아지는 주머니 탓으로 그런 소망마저 시들해져 버린 것인지, 아예 포기해 버렸기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추호도 물신주의(物神主義)나 배금주의(拜金主義)가 지양되거나 극복된 것 같지는 않으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사실 평소 우리 사회에는 악담(惡談)이 덕담을 뒤덮고 있는 형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남을 속이고 해치고 아픔과 슬픔을 주는 말들, 실현 가능성과 동떨어진 허언(虛言)이나 구두선(口頭禪)들이 난무한다. 세 치 혀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가 하면, 그 폭력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호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사람은 비수를 가시 돋친 말 속에 숨겨둘 수 있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의 소리'이며 '정신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말이 새해 덕담처럼 평소 일상에도 널리 확산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올해도 해바라기를 하기 좋은 전국 곳곳에 인파가 넘쳐났다고 한다. 남에게 '부자 되세요'라고 말할 마음의 여유마저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쳐지게 했던 한 해를 훌훌 털어 버리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새해의 새 빛을 열망하는 행렬이었을 것이다. 만성화된 실업,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불황과 정국 불안, 흔들리는 사회 안전망,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災殃) 등은 우리를 여전히 옥죄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경우 절박한 상황에서 더더욱 자유롭지 않다. 수십 차례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면접마저 한두 번 봤을 뿐이었다는 누군가의 고백은 그 사정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패거리 짓기에 눈이 어둡고 자신의 탓이 실종돼버린 듯한 정치권, 민생(民生)과 상생(相生)을 저버린 채 힘겨루기를 일삼는 정쟁(政爭), 갈등과 대립, 경제적 고통의 먹구름과 골이 깊이 파이기만 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개인이나 집단 간의 막무가내 이기주의…. 우리 사회는 그렇게 뒤틀리고 병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젠 달라져야만 한다. 힘 있고 가진 사람들부터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잘못은 '내 탓', 잘되면 '남의 탓'인 너그러움을 회복하면서, 성실하고 정직하며 참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새로운 기운을 낼 수 있는 '진정한 덕담'이 일상화되는 사회를 꿈꿔본다. 이 태 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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