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오다 오다/ 오다 슬픔 많아라(來如哀反多羅)/슬픔 많은 우리 무리여/공덕 닦으러 오다                                       -(삼국유사, 양지良志사석조使錫條) 이 가사는 통일신라시대 '영묘사 장육존상' 불상을 조성 할 때 서라벌 장안 남녀들이 '진흙을 나르는 시주'를 할 때 극락왕생을 염원하며 불렀다는 향가다. 며칠 전 겨울 햇볕 따스한 날, 나는 신라 최고의 조각가 양지 스님이 주석하던 '석장사'에 갔다. 동국대 캠프서 정문에서 왼편으로 돌아서 길의 끝쯤에서, 오른편 산길을 오른다. '석장사' 폐사지 답사는 이번이 두 번째다. 작년, 첫 번째 갔을 때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몇,  눈에 들어 왔다. 고은 시인의 시 구절,'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꽃, 내려 올 때 보인다'는 시 구절처럼. 절 아래 입구 계곡 쪽에 겨울인데도 맑은 산물이 졸졸졸 흐르는 옹달샘 하나를 보았다. 또한 옛 절터에 사용됐던 신라시대 큰 주춧돌과 넓은 시누대 나무들이 빙 둘러 싼, 빈 숲 터를, 오래 산 거목 두 그루를 다시 보았다. 절 초입에 있는 이쁜 팻말 '김호상의 문화유산 둘러보기' '석장사' 안내판이 참 고마웠다. (이 안내판 덕분에 석장사로 오르는 산길을 알 수 있었다) 전해 오는 '석장사' 설화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양지 使錫', 즉 '양지 스님이 지팡이를 부리다'란 뜻이다. 양지 스님이 지팡이 끝에 포대 하나를 걸어두면 지팡이가 저절로 날아서 시주의 집에 가서 흔들며 소리를 내고, 그 집에서 그것을 알고 재(齋)의 비용을 넣어 포대가 차면 절로 날아 돌아온다는 얘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어쩌면 이 마술 같은 이야기는 불어 난 '서천'을 건너지 못해 곤란을 겪었던 양지 스님의 꿈이 녹아서 만들어진 설화가 아닐까?(동국대 30주년 기념 글) 양지 스님이 '석장사'에서 불탑과 소조불상을 많이 조각했는데, 석장사의 '탑' 자리는 절 터 어디쯤이며, 그 많은 소조 불상을 구웠던 가마터도 있을 법한데….  어디쯤일까? 양지 스님께서도 그 옛날 지팡이를 짚고, 이 한적한 산길을 걸어 올랐을까?  기록에 의하면, 양지스님의 조상이나 고향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오직 '신라 선덕왕 때 자취를 나타내었다'라는 사실과 사천왕사 기단부의 조각상을 제작하였다는 내용을 통해 선덕여왕대에서 문무왕대에 걸치는 7세기 전반에서 후반에 활동했던 인물로 보인다. (동국대 한정호 교수의 말에 따르면, 1986년과 1992년 두 차례 발굴 시에 발견된 유물 중 '錫杖'이라 쓰여진 '묵서자기'가 출토되었다고 함) 저물 녘, 새소리도 없는 한적한 산길에서 나는 잠시 나그네 심사가 된다. 어디선가 양지스님의 낭낭한 염불소리 '래여 래여 래여  래여 애반다라…'가 들려 올 것 같은 경주의 겨울 날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