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화가 빨갛게 피었다. 여느 해 같으면 그 강렬한 빛깔에 매혹되어 탄성을 질렀을 것인데 잇따른 자녀 살해 사건 때문일까, 핏빛 죽음이 뜰에 가득하다. 밤이 되자 계절의 끝자락을 잡은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어제처럼 죽음의 영들이 찾아왔다. 꿈이 아니다. 장난감에 맞은 10개월 된 아기가 말한다. 배고파, 졸려. 걸레 봉을 든 30개월 쯤 된 아이는 이거 뭐야? 꺼내, 꺼내, 하며 서랍을 세차게 두드린다. 일곱 살 먹은 여자애가 땅속이 너무 추웠다고 하자 동강난 뼈 하나가 일어서며 입술을 파르르 떤다. 난 냉동실에서 지냈어. 그 때 방문이 열리며 발가벗은 중학생 소녀가 들어왔는데 붉은 얼룩이 온몸에 꽃을 피웠다. "우리는 어서 하늘로 가야해"소녀가 슬픈 어조로 말하자 10개월 된 아기가 맑은 눈망울로 소녀를 올려본다. 아가야, 너도 많이 놀랐지? 언니도 매 맞을 때 무서워서 오줌을 쌌어. 자꾸 맞으니까 두려움도 아픔도 둔해지고 그냥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렸어. 나중에는 분노가 끓어올랐지. 일곱 살 여자애도 목소리를 높였다. 언니야,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아이는 맞으면서 자라고 매로 가르쳐야 한대. 홍두깨로 세 번만 패면 그 미련한 소도 담을 넘는대. 그러면 소는 어디로 가는 거야? 그러게, 썩어가는 내 몸의 악취를 지우려고 방향제를 피우던 아빠, 아빠 마음은 어땠을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에 나오는 말썽꾸러기 악동, 제제가 생각나네. 제제는 실직한 아빠를 기쁘게 해주려고 거리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주잖아. "나는 벌거숭이 여자가 좋아. 나는 벌거숭이 여자가 좋아" 거리 아저씨들처럼 즐거워할 줄 알았는데 아빠는 허리띠로 죽도록 제제를 때렸지. 제제는 때리는 이유를 몰랐고 그 아빤 다섯 살 난 제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서 제제는 어떻게 됐어? 그 책은 직접 읽어봐야 해. 특히 어른들이 보면 제제의 유일한 친구 뽀르뚜까 아저씨에게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어른들 마음을 읽지 못하듯 어른들도 우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분명해. 절벽에 걸린 외줄을 타듯 어른들이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간다는 건 알아. 지독한 스트레스에 의지를 빼앗겨버리면 분노를 조절하는 힘을 잃게 돼. 그때는 떼를 쓰고 애를 먹이는 자식이 악마로 보이나 봐. 이곳에 오려고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어떤 사람이 혀를 차며 하는 말을 들었어. 사랑이 메말라 버려서 짐승이 되었다는 거야. 믿을 수가 없어. 짐승도 새끼를 사랑하는데 엄마아빠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지 않겠어? 10개월 난 아기가 중학생 소녀에게 기어오르며 숨이 넘어가게 울었다. 울지 마, 아가. 네 엄마는 우울증이란 병에 걸린 거란다. 우리 엄마는 병도 안 걸렸는데, 하고 일곱 살 여자애가 피멍 든 손목을 쳐들며 말했다. 난 아기 때부터 사랑의 매를 맞았어. 세살 먹은 버릇 여든 간다며,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며. 사랑의 회초리는 나이가 들수록 굵고 매워졌어. 난 왜 매를 들어야 말을 듣는 짐승이 됐지? 그건, 매의 효과가 빠르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훈육의 신념이 되어버린 거란다. 설명을 덧붙인 중학생 소녀가 아이들을 재촉했다. 자, 이제 떠나야 해. 우린 엄마 아빠를 용서해야 하늘로 갈 수 있어. 용서란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란다. 여전히 엄마아빠는 우리를 사랑한다고 믿어야 해. 엄마! 아빠! 아이들의 흐느낌에 바람이 잉잉 운다. 홍매화가지에서 새들이 푸르르 날아오른다. 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