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이 지났다. 봄이 온다. 경주의 봄이 오고 있다. 집 마당에도 매화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상사화도 새파란 싹을 텄다. 이 좋은 경주의 봄날, 나는 오랜만에 황룡사 터를 찾는다. 봄 신명이 났다. 분황사 입구를 지나다 보니 오래된 기와지붕을 한창 수리 중이다. 나는 황룡사로 직진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일부러 허물어진 옛 돌담길, 텃밭근처를 서성거린다. 웬 아낙네 하나가 텃밭을 일구다 나를 쳐다본다. 텃밭 옆에서 나는 옛날에는 미쳐 보지 못했던 고인돌 같은 큰 바위 하나를 발견한다. 아, 이건 고인돌이 아닌가! 그렇다. 황룡사와 분황사근처에는 옛 선사시대 고인돌들의 자취가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경주 동국대 한정호 교수의 말). 그래서 황룡사 장육존상 그 큰 대좌에 사용한 큰 화강암 돌도, 가까운 분황사 근처의 고인돌을 깍아서 사용했다는 한정호 교수의 탁월한 논문 생각도 났다. 폐사지에 부는 바람은 언제나 허허롭다. 한적한 황룡사 터를 걷는다. 나는 지금은 심초석과 주춧돌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황룡사 터, 그 장엄했던 구층목탑지를 보며 백제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생각한다. 황룡사 구층목탑은 당나라에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 온 자장율사가 삼국통일의 구심점으로 삼고자 선덕여왕에게 건의하여 건립된 탑으로 백제의 장인 아비지를 초청하여 645년에 완공한 탑이다. 탑의 찰주를 세우는 공사에서 목탑 건립을 주도했던 백제의 대장인(大匠人) 아비지와 관련된 소동을 역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처음 찰주를 세우던 날에 공장 아비지가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꿈을 꾸었다. 아비지는 마음속에  의심을 품고 일을 멈추었더니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며 어두워지는 가운데 노승 한 사람과 장사 한사람이 금전문(金殿門)에서 나와 그 기둥을 세우고는 노승과 장사는 모두 없어지고 보이지 않았다. 이에 아비지는 일을 멈춘 것을 후회하고 그 탑을 완성 시켰다. 구층탑을 세우는데 3년이 걸린다. 그 때 선덕여왕한테서 초청받은 아비지는 몇 살 이었을까? 보물과 폐백을 받고 신라로 초청 받아 온 백제의 재인바치 아비지! 그는 기념비적인 구층탑 공사를 끝낸 후 고향 백제로 돌아갔을까? 아마 돌아갔을 것이다. 그로부터 31년 후, 676년에 신라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드디어 삼국을 통일한다. 아무도 모른다. 삼국통일 후의 아비지의 행방을. 백제 멸망 그때까지 아비지는 과연 살아 있었을까? 죽었을까? 만약 그때까지 아비지가 살아 있었다면 아비지는 몇 살이었을까? 신라의 포로가 된 아비지는 신라 땅에 과연 다시 왔을까? 다시 와서 자기가 옛날에 세운 그 기념비적인 황룡사 구층탑을 다시 보았을까? 어떤 심정으로다시 보았을까? 역사는 아무도 모른다. 아비지( 阿非知)의 비밀을. 역사는 비밀이 많아 더 신비로운지도 모른다. 고려 고종(1238년) 때,  몽고 란으로 안타깝게 불타버린 우리의 기념비적인 황룡사와 구층목탑지, 폐사지로 흘러 보낸 788년, 그 세월이 안타깝다. 나는 고독한 섬같은 심초석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수십 톤의 저 심초석! 아비지는 과연 무슨 기술로 저 심초석을 옮겼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중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황룡사 남쪽 담장 외곽 쪽 발굴공사가 한창이다. 구층목탑지 쪽으로 머리에 수건을 동여 멘 아비지 닮은 사람이 얼핏, 지나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