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굣길에 핀 개나리만큼이나 샛노란 봄이다. 신학기를 시작하는 학교는 어느 때보다 바쁜 계절이고 아이들도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농부처럼 꿈의 씨앗을 뿌린다. 이번 학년에는 좀 더 잘하겠다는 결심으로 진로희망서 작성한다. 도표 안을 빼곡하게 메운 수많은 직업군을 보는 표정들이 사뭇 진지하다. 연예인, 가수, 뮤지컬 배우, 예술가, 작가를 희망하는 학생이 뜻밖에 많다. 그중 연예인을 희망하는 수가 압도적이다. 교사는 실천 가능한 진로를 선택해서 적으라고 채근한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꿈이 안타까운 게다.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청년이 있었다. 노력해서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믿은 청년이었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음정을 맞추지 못했다. 자기 파악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뮤지컬 배우의 꿈이 좌절되자 이번에는 부모를 졸라 실용무용에 입문했다.  음치는 있어도 몸치는 없다는 말대로, 일 년 동안 레슨을 받은 후 예술대학 실용 무용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의 신체적 구조는 한계에 부딪히며 겨우 졸업을 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는 열심히만 하면 성공한 1%에 들 수 있다고 믿었다. 애초에 그가 꿈꾼 무용수의 보편적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그는 지금 일자리를 찾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독일의 가장 냉철한 경영자이며 위트 작가인 롤프 도벨리는 우리에게 생존편향(survivor bias)이라는 환상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범한 99%가 아닌 1%에 속한다는 환상 을 가지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것에 집착한다. 그 가능성을 믿고 부모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고액과외를 시키고, 외국 유학을 보내며 자식의 성공을 위해 뒷바라지한다. 하지만 뚜렷한 성공의 결과를 얻는 사람은 1%에 불과하다.  일전에 한 상담자가 찾아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쓴 글은 평범했다. 그녀에게 출판시장에서 살아남은 작가를 손꼽아 보라 했다. 원고청탁도 받지 못하고 생활이 곤궁한 전업 작가가 대부분이며 필자도 거기 속한다고 말했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는 성공에 대한 전망을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모른다.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얼굴을 부러워하면서 우리의 생존편향 환상은 속수무책으로 부풀어 오른다. 매스컴은 실패한 사람의 발굴에는 관심이 없다. 청소년들이 그 사실을 알고 매스컴을 대하면 진로에 대해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이 쓴 '인간의 굴레'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주인공 필립은 신학교를 다니다 그만두고 갈등하다 화가가 되려고 프랑스로 떠난다. 화원에서 그림지도를 받던 중 그림에 지독히 재능이 없는 가난한 노처녀를 만난다. 그녀는 하루 우유 한 팩으로 배고픔을 견디며 그림을 그린다. 어느 날 그녀는 그림 수준이 초등학생 수준도 안 된다는 스승의 말에 충격을 받고 목을 맨다.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필립 역시 뛰어난 화가가 될 수 없다는 충고를 듣는다. 스승은 자신에게도 솔직히 말해줄 스승이 있었다면 지금 그림교습소나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스승 역시 무명화가에 그친 것을 한탄하는 말이었다. 필립은 화가의 꿈을 깨끗이 접고 고생 끝에 의사가 된다. 생존편향의 환상이 사라진 것이다.  롤프 도벨리는 착각을 일으키는 생존편향을 줄이고자 한다면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라고 말한다. 성공이라는 달고 맛있는 열매를 꿈꾸기 전에, 필요한 실질적 사고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성공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점차 구체적으로 손에 잡힌다. 1%의 성공자가 아니어도 우리의 삶은 의미 있지 않을까. 평범한 99%의 삶에도 진정한 생의 기쁨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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