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0일, 나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주관한 월성 발굴 현장 공개행사장에 갔다. 신라왕궁 발굴현장은 엄청난 호기심으로 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발굴된 궁궐내의 담장과 통일신라 후기로 추정되는 건물지의 적심들, 돌무더기 유구들을 둘러보며 시종일관 내 머릿속에는 '왕이 살았던 곳은 과연 어디지?' 이 물음이었다. 월성은 신라왕들이 생활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월성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월성은 신라의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곳이고 궁 안에는 다양한 건물도 있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조원전', '숭례전'은 어디쯤이며(아마 동남쪽 d지구에 일지 모른다), 삼국유사 '만파식적조'에 나오는 만파식적을 보관했다는 '천존고'는 어디쯤일까? 월성 내부의 지형 중,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던 높은 곳은 어디였을까? 그 곳은 아마 술자리도 벌릴 수 있는 경치가 아주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때는 한가위 날이었는데 왕이 월성의 언덕위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았다. 곧 시종관과 더불어 술자리를 벌이고 즐기다가 윤중을 불러 오라고 명했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월성은 신라의 탄생과 멸망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신라인들이 작성한 또 하나의 소중한 실록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발굴조사 현장공개 중심지는 c지구(석빙고 앞)였다. 이곳에서 통일 신라 후기 '관청지'로 추정되는 건물터가 발굴되었다. 기다란 건물지와 함께 흙으로 만든 '토제 벼루'가 50여점이나 출토된 점으로 보아 이곳은 궁궐 내에서 문서를 작성하는 중심 공간임을 짐작케 했다. 또한 다량의 토기와 '儀鳳4年皆土', '習部', '漢只' 등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를 출토한 성과도 얻었다. 그날 발굴 현장 공개 행사에는 이색적인 풍경도 보였다. 유치원 꼬마들과 초등학생들의 단체관람이었다. 석빙고 앞에서 시작하여 계림 근처, 현재도 진행 중인 월성 '해자 발굴' 현장까지, 약 800미터 구간을 질서정연하게 관람하는 어린이들,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저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것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가. 그들이 미래 우리들의 희망이 아닌가. 화사한 봄 햇살을 받으며 옛 신라 궁궐에서 벌어졌던 지난 역사들을 마음껏 상상하면서 몽상에 잠겨서, 월성 둘레 길을 걷는다는 것은 색다른 삶의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월성을 걷다' 공개 행사는 앞으로도 더 계속되어야 한다. '월성 함께 걷기', '월성퀴즈 맞히기', '기념사진 촬영' 그리고 '발굴조사 체험' 푸로그램 진행도 신선했다. 나도 그날 생애 첫 발굴 체험을 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발굴조사 체험'은 나를 흥분시켰다. 연구소에서 제공한 발굴 도구로 살살 땅 속을 파헤치는 그 긴장감! 대단했다. 봄 햇살보다 더 강렬한 경주의 추억으로 남았다. 그날 월성을 걸으며 아쉬운 점도 있었다. 동행한 최민희(신라역사연구가)선생과 필자는, 월성 어느 높은 언덕에 시야가 툭, 트이는 장소를 한곳 만들어 (전망을 막는 나무가지들을 쳐 내어서) 첨성대와 계림, 월지 등등. 경주의 시내를 한눈에 조감 할 수 있는 멋진 '월성 전망대'라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그 전망대는 또 하나의 경주의 명소가 될 텐데'하는 생각을 최민희 선생과 조심스레 의견을 나누었다. 봄 햇살이 유난히 밝고 따스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