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부스가 중남미의 담배를 유럽에 처음으로 소개한 시기가 15세기가 아니라 21세기였다면, 담배는 대마초처럼 마약으로 분류되어 규제됐을 것이라 한다. 담배의 해로움과 중독성이 알려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어서, 이와 관련하여 외국에서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까지는 다소 미흡한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 2013년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세미나에서 공단 정책연구원과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이 공동으로 연구한 '흡연의 건강영향과 의료비 부담'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 연구는 공단의 빅데이터를 활용해 한국인 130만 명을 19년 동안 추적 관찰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역학연구로, 흡연이 개인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건강보험 진료비에 차지하는 비중 등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고 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흡연자는 각종 암 발생 위험도가 비흡연자에 비해 최소 3배에서 최대 7배 정도까지 높고, 흡연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진료비(2011년 기준)가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의 3.7%에 해당하는 1조7000억원에 달한다. 또 흡연이 질병 발생에 영향을 주는 기여위험도 순위는 폐암·심장병·방광암· 뇌졸중 순으로 분석되었다. 이 연구결과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과학적·실증적으로 입증한 것으로서, 연구결과 발표 이후 언론기관을 포함한 여러 기관단체에서 국민의 건강과 보험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건강보험공단이 담배제조사에 소송을 포함한 다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의견의 근거는 손실에 대한 책임은 원인 요인에 부담시킨다는'원인자 부담 원칙'인데, 흡연으로 인해 발생하는 진료비와 각종 사회경제적 손실의 책임은 흡연자와 담배제조사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담배 1갑에(4500원)는 2477원의 세금과 841원의 건강증진기금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담배를 구매하는 사람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다. 그야말로 담배회사는 책임지는 부분이 없다. 이에 따라 공단은 2014년 4월 공공기관 최초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흡연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담배를 피워 많은 국민이 암에 걸렸고, 이 진료비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됐으니 담배회사가 일정부분 물어내라는 소송인데 오늘 22일 8차 변론이 있으며, 그동안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두고 지리한 공방전을 펼쳐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담배로 인한 손실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해 1950년대부터 법적 소송이 이어지고 있고, 1998년에는 필립모리스 등 담배제조사가 2460억 달러를 변상하기로 합의한 사례도 있다. 앞으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게 될지도 모르는 담배소송은 그 결과의 승패를 떠나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소송 과정 중에 담배의 해악이 강조되고, 그동안 간과했던 담배회사의 책임을 논의의 장으로 끌어내고, 담배의 첨가물 등 자세한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소송을 계기로 흡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금연이 확산되고, 이를 통해 국민의 건강이 나아진다면 이것은 금액으로 환산하기 힘들 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번 공단의 담배소송은 국민과 흡연자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도 담배회사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으로, 시민단체를 포함한 많은 단체가 지지성명을 내기도 한 만큼 국민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