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푸르른 오월에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을 보냈다. 사랑과 감사가 하루의 기념일에 그치지 않기를 소망하며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을 바라본다. 나무들처럼 푸르게 살고 싶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혼란하고 우울한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중에 법조계의 뇌물 비리사건은 어느 사건보다 우리를 슬픔에 빠뜨린다. 진상이 어떻게 밝혀질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미 물의를 일으켰으니 우리에게 신뢰를 잃어버린 셈이다. 법을 다스리는 사람이 범법자가 된다면 참으로 가치관 부재의 비극이 아닌가. 그래서 간절히 묻고 싶다. "당신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오래전에 한 고등학교에서 청소년 자아성장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설문을 했는데 한 학급에서 서너 명을 제외한 다수의 학생이 '돈'이라고 응답했다.  그들은 '돈을 많이 벌어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라고 했고 '돈이면 못할 게 없다'며 인성교육을 하려는 상담자를 오히려 설득했다. 이번 법조계 뇌물 비리사건의 피의자는 그 시절의 청소년 나이였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패스하기까지 숱한 세월 동안 그들이 공들인 노력이 돈이라는 가치에 함몰되어 버렸다.  러시아 속담에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다'는 말을 새겨 볼 일이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돈은 최고의 하인이면서 최악의 주인'이라고 했다. 돈에 관한 가치관 부재 현상은 태초에 인간이 창조된 이후 끊임없이 고민해온 문제다.  이미 B.C 1450년경 모세는 하나님에게 십계명을 받았다. 제 7 계명에 도적질하지 말라, 제 10 계명에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단순한 계명인가. 그럼에도 내 것 아닌 것을 욕심내는 탐심은 늘 인간의 선한 의지를 공격한다.  돈에 대한 철학을 피력한 한 여대생의 작문 리포터를 보고 웃음을 머금은 적이 있다. 그녀는 돈이면 다 된다는 아버지와 돈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논쟁을 들으면서 성장했다. 어느 날 그녀는 예전에 읽은 책을 뒤적이다 만 원권 지폐를 발견한다. 책상 위에 있던 지폐를 책갈피로 끼워 넣고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탄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나중에는 지폐를 책갈피로 쓰는 버릇을 즐기기까지 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돈을 대수롭지 않은 종잇조각으로 취급하니 왠지 모르게 쾌감이 생기더라는 것이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돈을 변소에 빠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돈이 내 손가락 닿는 순간에서 그 벙어리(저금통) 주둥이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것없는 짧은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이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버렸다.  이렇게 주인공을 내세워 매춘하는 아내가 준 화대를 변소에 빠뜨리게 한 작가 이상의 의도는 돈에 대한 초월에 다름 아니다. 만 원권 지폐를 책갈피로 쓴 여대생의 행위와 상통하지 않은가. 그녀의 작문 요지는 이러했다. 돈이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추하게 만드는 더러운 구석이 있다. 이상의 초기 소설 '12월 12일'에서도 '돈! 이것 때문에 그의 인간성이 이렇게도 더럽게 변하고 말다니!'하고 통탄했다. 그녀는 자신의 노력과 의미가 담겨있지 않은 공짜를 싫어했고 로또에 소비되는 500원을 귀히 여겼다. 500원을 열 번 모으면 난민 아이의 한 달 양식이 된다는 것이다.  돈은 필요하지만 더러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 속성에 이성을 빼앗겨버리면 돈의 노예가 된다. 이 아름다운 계절, 우리를 칭칭 동여맨 돈의 사슬을 과감히 끊어버리고 저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보자.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