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워낙 시끄럽고 부정 부패 소식이 난무하다보니 요즘 공직자들의 최고 가치가 청렴이 된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수량은 세 명의 임금을 섬기고 삼정승 육판서까지 지내며 38년간 벼슬을 살았으나 집 한 칸 없었고 그가 죽었을 때는 메고 갈 상여가 없어 나라에서 장례비를 댔다고 하고, 이원익은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냈으나 집은 두어 칸 짜리 오막살이 초가였다. 이처럼 조선시대에서도 공직자의 가장 큰 미덕은 청렴이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이 청렴이 동양에서만큼 그렇게 높이 평가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까지의 우리 학교교육에서 서양의 청백리로 존경받는 사람은 아직까지 소개받은 적이 없는 것을 보면 그렇다. 서양에서는 청렴하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을 존경하기보다는 그렇게 만든 사회를 비판한다.  지금의 우리 공직자 사회는 이같은 동서양의 가치관이 혼재한다고 볼 수 있다. 청렴한 공직자도 존경을 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직자가 가난해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가난한 공직자를 존경하기보다는 '그 정도 월급을 받으면서 가난하게 살다니, 주식투자하다 말아먹은 게 아닐까, 누구 보증을 잘못 섰는 모양이지' 하고 오히려 이상하게 여긴다. 과거에는 '청렴=가난'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무원의 평균 연봉이 5892만원(稅前)으로 중소 사업장의 연평균임금 3732만원보다 훨씬 많아 공무원들은 청빈하게 살며 존경받고 싶어도 이제는 영영 불가능한 세상이 됐다. 때문에 요즘은 청렴한 공직자보다는 유능한 공직자를 더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도 요즘 각 기관마다 '청렴서약식'이라는 것을 한다. 거의 매년 이걸 하는 것을 보면 좀처럼 청렴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요즘의 청렴 개념은 청빈이 아니라 지금의 수입에 만족하고 그 외의 것은 가지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공직자는 물론 사기업의 직원들도 '그 외의 것'에 집착하면 항상 사고가 난다. 지역에서 가장 청렴을 강조하는 기관이 대구시교육청과 경북도교육청일 듯 싶다. 대구시교육청은 지금의 청렴 정도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청렴 의지'까지 평가한다. 이들 두 교육청은 특히 비리의 소지가 있다며 시설공사에서 다른 기관들이 하지 않는 '우수 조달품 사용 금지'까지 나아갔다.  '우수 조달품을 사용하지 마라'니? 일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정책을 도입한 배경은 우수 조달품의 경우 경쟁입찰이 없이 수의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의계약=비리'로 인식하는 언론, 의회의 지적과 비판이 거세 두 기관이 궁지에 몰린 끝에 내린 정책이다. 사실 수의계약으로 인한 비리 사례는 연례행사처럼 있어왔다. 그런데 모든 정책이 완벽할 수가 없다. 수의계약이 불가능해짐으로써 당장 담당공무원의 업무가 폭증하고, 우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판로가 막히게 됐다. 가장 심각한 것은 저가자재를 학교 공사현장에 사용함으로써 안전사고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부품을 사용한 이름 모를 업체의 급조된 제품이 낙찰되기도 한다. 몇 년 후 사고가 났을 경우 이를 수리하기 위해 연락을 하게 되면 이미 이 업체는 사라지고 없는 상황이 수두룩 하다는 게 담당자들의 걱정이다. 학교 엘리베이터가 고장났지만 수리업체가 사라져 한 달 이상 가동되지 않은 곳도 있다.  그런데도 두 교육청은 학생들의 안전보다는 공무원들의 청렴이 더 중요하다며 좋은 제품은 학교 공사에 쓰지 마라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 자고나면 학생들의 안전사고가 터지는 마당에 '수의계약은 무조건 안된다'며 매년 이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청렴이 뭐기에 우리아이들이 여기에 희생돼야 하나. 안전과 청렴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영원히 불가능한가. 두 교육청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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