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교에 들어간 아들 녀석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남자고등학교에 다녔다. 중학교를 다니던 곳이 고교평준화지역이라 중학교 졸업 후 큰 고민 없이 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는 여건이었지만 고민 끝에 유학(?)을 보냈다. 집에서 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그 학교를 선택한 것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대학진학률이 좋다는 평판이 크게 작용했다. 입학원서를 내기 전 학교구경을 시켜준다는 핑계로 사전답사를 했지만 반응은 별로 했다. 부모님의 권유에 떠밀려 초, 중학교를 같이 다니던 정든 친구들을 떠나 낯선 외지 고등학교로 마지못해 진학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 녀석은 격주에 한번 잠시 집에 오는 것을 제외하곤 그 학교에서 3년간 기숙사 생활을 견뎌야 했다. 집 밥을 먹으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즐거운 등굣길 대신 좁은 2층 침대와 하루 세끼 모두 급식을 먹어야 하는 반 군대 같은 기숙사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아들 녀석이 무사히 졸업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갈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3년간 가르치고 지도해준 학교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남다른 열정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지도편달은 성적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쳐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그 분을 통해 교육의 의미와 함께 교육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새겨보게 됐다. 아들 녀석이 그 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늘 교장선생님의 글이 매일 한편씩 올라왔다.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관련한 이야기, 졸업생 방문, 축하할일 등 다양한 주제로 쓴 교장선생님의 글은 학교와 학부모간 소통의 역할을 하기 에 손색이 없었다. 빼어난 글 솜씨로 쓴 한편 한편의 글들은 멀리서 이곳까지 자녀들을 보낸 학부모들이 학교를 믿고 안심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의와 진정성이 가득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었다. 글을 통한 소통 외에 학생들의 인성지도와 성적향상을 위한 남다른 열의도 빼놓을 수 없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교장 선생님은 기숙사생들과 아침식사를 같이 한 뒤 자습실을 둘러보며 조는 학생들을 자상한 말로 깨워주는 걸로 하루일과를 시작하기 일쑤였다.  학생들의 성적 추이를 손금 보듯 하면서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은 부족한 과목에 대한 진단과 대처방안을 일일히 설명해줄 정도로 그분의 열정은 남달랐다. 교장선생님의 이런 노력은 학생들의 대학진학 성적에 그대로 반영되어 매년 경북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교가 되었다. 학부모들 중에는 수능을 친 후 수시를 치러 떠나는 학생들을 마중하기 위해 새벽녘 기차역에 나왔던 교장선생님을 떠올리며 그 분을 추억한다. 학생 한명 한명을 일일이 안아주며 시험 잘 치고 오라는 격려를 하며 기차가 플랫폼을 벗어날 때 까지 손을 흔들던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한다. 차츰 스승을 찾기 어려워진다는 교육현장에서 이제 정년으로 교단을 떠난 교장선생님 같은 분들이 어디선가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기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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