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살면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동궁과 월지'앞을 지나 다닌다. 주말엔 '동궁과 월지'앞은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그러나 관광객들은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 서편에 있는 '천주사' 옛 절터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천주사'안내판도 없다) 옛 '안압지'를 거닐때면 '안압지' 대신, 내 마음은 '천주사 절터가 어딜까?' '대숲이 우거진 여기가 옛 '천주사'터가 맞을까?'로 향한다. ('천주사'의 위치는 조선시대 기록에서 모두 월성의 북쪽이자 '동궁과 월지(안압지)'의 남쪽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천주사'는 신비한 마력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며칠 전 월유선생(신라문화동인회원)과 나는 '월지'를 찾았다. 우리는 '월지'주위를 처음 보듯 천천히 한 바퀴 돈다. 어떤 사진작가가 '월지'숲에 서식하는 딱따구리의 생태를 촬영한다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딱따구리 새의 행방을 쫓고 있었다. 달의 연못, '월지'. 퍽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다. 서편 쪽 울창한 대나무 숲 옆에는 (언제 발굴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절터를 말해주는 주줏돌과 장대석 석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뒹굴고 있다. '천주사'가 나를 강렬하게 당기는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삼국유사> '사금갑조'에 등장하는 서출지 이야기, '소지 마립간' 때 궁궐 내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내전분수승 內殿焚修僧' 이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26대 '진평왕'이 '내제석궁'에 행차했을 때 돌사다리를 밟다가 한꺼번에 돌 세 개를 부러뜨렸는데 "이 돌을 다치지 말고 후대들에게 보여주라"라는 설화 때문이다. 이 두 개의 설화가 있는 곳이, 여기 '천주사'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천주사' 라는 절터가 있는지는, 필자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알 수가 없다. 다만 문헌자료에 의해서 어떤 感으로 여기가 '천주사'로 추정 할 뿐이다. 경주대학 故이근직 교수도 ('신라에서 경주까지' 181페이지) 이런 추정을 하고 있다.  그날, 월유선생과 나는 대숲 옆 서편 밭 언저리를 한참이나 기웃거렸다. 지금은 밭으로 된 넓은 그 곳 여기저기서, 삼베 흔적이 찍힌, 신라시대 기와 파편들이 보였다. (아, 여기가 틀림없는 옛 절터구나!)  그날, 지금은 채소를 경작하고 있는 밭두렁에서, 눈 밝은 우리의 월유 선생께서, 땅속에 묻힌 커다란 주춧돌 하나를 발견한다. (와, 대단한 횡재다.) 절터의 그 주춧돌은 굉장히 큰 주춧돌이었다. 여기가 과연 '천주사'터가 맞을까? 발견된 주춧돌 하나가 내 호기심을 더욱 더 자극했다. '동궁과 월지'내의 '천주사'터로 추정되는 이 곳은, 경주 시내 한 가운데라 앞으로도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계속 자극할 것이다.  나는 정확한 기록을 위해 앞으로도 틈만 나면 자주 이 곳을 찾으리라, 초여름 날의 오후. 무성한 연잎이 출렁대는 연못에는 곧 청초한 연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나리라. 다음 기회에는 황금불빛 조명을 밝힌 안압지 밤에 '월지'와 밤의 '천주사지'를 산책해 보리라. 월유선생과 나는 무성한 대숲 사이를 빠져나와 아름다운 '월지'의 숲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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