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열전 이의민 조'를 읽는다 -이의민은 의종을 연못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갔다. 술 두어 잔을 드리고 이의민이 등골뼈를 부러뜨리니, 손대는 대로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의민이 큰 소리로 웃었다. 의종의 시체를 요로 싸고 두 개의 가마솥을 포개 그 속에 시체를 넣어 못 속에 던져 넣었다. 그러나 절의 중으로서 잠수를 잘 하는 자가 있어 가마솥을 가져가고 시체는 버리니, 시체가 물가로 밀려 나와 여러 날을 지냈으나, 까마귀와 솔개가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고려사, 열전 이의민 '고려사, 열전 이의민 조'를 읽다가, 경주 천민출신 '이의민'을 떠올리며, 나는 문득 비극적 역사의 현장인 경주의 '곤원사坤元寺터'가 어딜까? 하는 호기심과 의문에 사로 잡혔다. (경주에 살면서 나는 아직도 경주를 너무 모른다!) 신라시대 경주의 하천변에는 많은 절터들이 있었다 '삼천기'(모량천과 기린천이 합수되는 지점) 주변에는 '傳신원사지', '傳곤원사지', '傳담엄사지'등의 절터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러한 절터 중 '신원사'와 '곤원사'의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도 사람들마다 이론이 많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원사'에 대한 짧은 기록을 찾아보니. '도화녀 비형랑'조에 '귀교'鬼橋의 위치를 설명하면서 '신원사 북거北渠'라는 '신원사' 절 이름이 나온다.(신라 진평왕때 이미 '신원사'가 존재 했다) '곤원사'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니. '고려사'에서는 이의민이 의종을 죽인 후 그 시신을 방기한 위치로 '곤원사 북연 北淵'이란 장소가 나온다. 며칠 전 나는, 내 친구 월유 선생과 함께 역사의 현장인 '전곤원사傳坤元寺터'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먼저 '오릉' 남쪽에 있는 '탑동 정수장'을 찾았다. '탑동정수장'안 넓은 마당에, 큰 석탑의 옥개석 1매와 탑재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뒹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이 '傳신원사터'가 아닐까? (정수장 직원은 '傳곤원사터'로 추정하고 있었다) 얼마 전 나는 '탑동유적발굴'(2005년)에 대한 귀한 논문 1편을 읽었다. 그것은 <경주 三川岐주변 절터위치 비정(比定)에 관한 一考>라는 논문으로, 현재 '중앙문화재 연구원' 발굴팀장으로 계시는 '김경동' 박사의 논문이다. 김경동 박사는 문헌 기록상에 나오는 '곤원사'가 "신원사 남쪽 2리에 곤원사 북연北淵이 위치한다"는 문헌기록에 주목한다. 즉 '곤원사'의 위치 비정에 있어서 '연못'의 존재가 중요한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이 '연못'에 관해서는 2002년 '영남 문화재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한 <도계-경주 간 국도 35호선 확장공사 구간> 공사 때, 토층아래 넓은 '흑갈색 뻘층'이 확인됐다고 한다. 이 '흑갈색 뻘층'이 대단히 중요한 유구가 된다. 즉 '흑갈색 뻘층'이 나왔다는 것은 이곳에 옛날에는 큰 '연못'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한 이 지역에서는, 여름에, 물 많은 지역에서 서식하는 수생식물인, '부들'도 자라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오늘 날 '금성로'와 '서라벌대로'가 만나는 삼거리 남쪽 지역에, "곤원사의 북연北淵", 즉 의종이 죽은 문제의 '연못'이 존재 했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가 바로 '곤원사 북연'으로 추정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아직도 '탑동유적 발굴조사'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연구는 더 계속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김경동 박사의 논문에서 추정 하듯, '탑동 정수장' 일대가 '신원사지'이고, 그 남쪽 시굴 조사된 '탑동유적'은 '곤원사'의 사역의 일부가 되고 '흑갈색 뻘층'이 확인된 지역은 '곤원사의 북연'으로 추정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역사는 살아 있다. 역사는 각본 없는 드라마다.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196년 (고려 명종 26)4월, 권력을 잡고 온갖 횡포를 부리던 '이의민'도 역적으로 몰려 최충헌 일당에게 죽임을 당한다. 최충헌은 "이의민의 머리를 개경 저잣거리에 매달았다".고 역사는 아프게 진실을 기록하고 있다. '탑동 정수장'의 부서진 옥개석과 흩어진 주춧돌들은 아득한 신라와 고려의 역사 현장을 목격했으리라. 경주 하늘은 오늘도 유난히도 푸르고, '傳신원사터'도 사라진 '곤원사 북연'北淵도 2016년 6월 오늘, '탑동 정수장' 저 무너진 옥개석도 아무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