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그림 '부부(夫婦)'는 아내 남덕(南德)과의 환상적인 사랑의 재회를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사랑의 재회는 너무나 애정적이고 에로틱하다. 정직한 화가 이중섭은 이 '부부'에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있다. 본능의 욕구를 가식 없이 묘사하면서 순수한 환상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간다. 김춘수는 이중섭의 이러한 에로틱한 면을 지나쳐 보지 않는다. 아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소재들이 모이고 있는데, 모두 프로이트나 칼·융이 성(性)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 물상들이다.   서귀포 남쪽 / 바람은 가고 오지 않는다. / 구름도 그렇다 / 네가지 빛깔을 다 죽이고 / 바다는 밤에 혼자서 운다 / 게 한 마리 눈이 멀어 / 달은 늦게 뜬다 / 아내는 모발(毛髮)을 바다에 담그고 / 눈물은 아내의 가장 더운 곳을 적신다.  -문학사상.1976년 2월호 '서귀포 남쪽'은 아내 남덕이 있는 일본을 의미하고, "바람은 가고 오지 않는다"의 바람은 이중섭의 인간적 고뇌와 그리움을 집약한 것으로 보인다. "구름도 그렇다"의 구름은 바다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네가지 빛깔을 다 죽이고 / 바다는 밤에 혼자서 운다"의 바다는 모든 빛깔을 다 수용하는 바다, 모든 생명적 존재를 탄생시키는 산고(産苦) 아픔을 의미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여성의 가장 더운 곳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게 한 마리 눈이 멀어 / 달은 늦게 뜬다"는 표현은 앞에서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발정(發情)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이 눈먼 게에게는 광명(光明)보다 어둠이 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다와 게와 달은 성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면에서 잘 조응되어 참신한 시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김춘수의 성적(性的) 관심은 마지막 두 행에 와서 더욱더 충동적인 색깔이 짙어진다. "아내는 모발을 바다에 담그고 / 눈물은 아내의 가장 더운 곳을 적신다"의 모발과 바다, 아내의 가장 더운 곳은 여체의 가장 깊은 곳을 상징하여 성의 신비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상징성은 의도적이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작가의 마음속에 심상 풍경을 형성한다.  이 시는 이미지를 처리하는 기법에 있어서 김춘수 시인이 항상 말하고 있는 내면적 충동의 외부적 정경묘사인 '의미의 무의미화'가 시도되고 있다. 김춘수 시인은 관념이나 의미를 배제하는 무의미시를 주장해 왔지만, 연작시 '이중섭'은 의미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중섭의 회화와 생활을 무의미의 의미로 시화하는 새로운 시도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중섭의 회화예술과 예술 활동의 바탕을 이루는 비현실의 현실적 가치는 김춘수의 시에서 보다 많은 의미와 미적 의의를 가지고 등장한다. 김춘수 시인은 어떤 화가, 시인들보다도 이중섭 예술의 진수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이중섭이 추구하던 예술의 원초적 원리를 장르의 초월을 통해 예술미를 구체화시킨 시인이다. 이중섭과 김춘수가 공통적으로 실험한 성적본능의 감각적 표현은 독자들에게 미적(美的) 즐거움과 충격으로 전달된다. 예술은 언제나 한계를 그을 수 없는 무한성에서 그 의의를 발휘한다. 김춘수의 연작시 '이중섭'은 이런 점에서 그의 시 '꽃'과 더불어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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