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관련 프로젝트들은 모두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을 이론적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의 핵심은, (1) 현재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의 일원이고 (2) 그들이 이룩한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다. 중국학계에서는 요하문명의 주도한 집단이 중국인들의 조상이라는 '황제족(黃帝族)'이라고 보고 있고,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 후기(B.C. 3500~3000년)에 이미 '초기 국가단계' 혹은 '초기 문명단계'에 들어선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 잡았다. 현재 전개되는 중국의 상고사 재편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중국학자들의 논의대로라면, (1) 이 지역에서 발원한 예·맥족, 부여족 등이 모두 고대로부터 중화민족의 일부가 되고 (2) 이 지역에서 기원한 예·맥족은 물론 주몽·해모수 등 한국사의 주요 인물들은 황제의 후손이 되며 (3) 한국의 상고사 대부분이 중국의 방계 역사로 전락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해야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요하문명에 대한 연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필자는 요하문명은 중국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본다. 많은 요소들이 고대 한반도, 일본, 몽골 등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요하문명 발견 이후 동북아 상고사에 대한 중국의 시각변화는 한·중 사이의 새로운 상고사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미래의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요하문명을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중국 고고학의 대원로인 (고)소병기(蘇秉琦. 쑤빙치. 1909~1999) 선생은 요하문명과 황하문명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Y자형 문화대(Y字形的文化帶)'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Y자형 문화대'이론은 한반도 지역이 제외된 채 중국 안에서, (1) 북방 초원 지역 (2) 중원 황하문명 지역 (3) 요서 요하문명 지역을 잇는 것에 불과했다. 필자는 내몽고 적봉시에서 열린 '제10회 홍산문화 고봉논단'(2015.8.11.-12)에서 '요하문명과 'A자형 문화대''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필자의 'A자형 문화대' 이론은, (1) 요하문명은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2) 서남방으로 중국 쪽으로 (3) 동남방으로 한반도와 일본까지 (4) 장강 하류에서는 해로를 통해 한반도 남부와 일본으로 연결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요하문명 지역에서 발견되는 (1) 특이한 옥 귀걸이인 옥결(玉玦))의 분포 (2) 빗살무늬 토기의 분포 (3) 각종 적석총의 본포 (4) 비파형동검의 분포 (5) 치(雉)를 갖춘 석성의 분포 등을 보명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요하문명의 발견이 새로운 역사 갈등의 단초가 아니라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이 동북아로 옮겨오는 '동북아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이런 때에 요하문명을 '동북아 시원문명'으로 보는 시각을 바탕으로 한·중·일·몽골 등이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인류의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동방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요하문명의 발견이 첨예한 역사 갈등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동방 르네상스'라는 희망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제 동북아 정치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의 지혜를 모아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