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폭염으로 온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고고도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배치, 경제 불황, 청소년 수당 문제 등 나라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반면에 브라질 리우 올림픽 양궁 경기장으로부터 한 밤의 더위를 녹여주는 시원한 소식에 우울했던 국민의 마음은 한층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신라 천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에서 세계 최고의 '궁사'탄생은 화랑의 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라 고도 천년의 역사가 숨 쉬는 서라벌에서 탄생한 새 화랑 구본찬(23·현대제철) 양궁 선수는 경주가 낳은 장한 아들이다. 경주 용황초교와 신라중, 경북체고를 거쳐 세계를 재패한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구 선수의 영광은 우리 민족의 쾌거다. 리우 올림픽의 양궁 단체 경기에서 강호 미국 팀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개인전에서 금메달이 추가돼 2관왕이 되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결승 경기에서는 비교적 순탄하게 승부가 났지만 우승에 있기까지 어느 어려운 난관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다는 것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바이다 양궁은 서양에서 주로 하는 활쏘기 스포츠이다. 우리나라의 '국궁'에서 시작했고 근래에 와서 양궁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스포츠로 애용하게 됨에 따라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되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많이 활용하고 있는 종목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정신을 이어받은 경주교육청은 구기경기 종목으로 육성하면서 주무학교에 계림초등을 선정했다. 학교 규모가 축소되고 학생수가 감소됨에 따라 선수 부족현상이 생겨서 양궁의 전통을 이어가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는 신라인이기에 서라벌의 향기가 숨 쉬는 이 곳에서 양궁 경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교육청의 스포츠 활성화 정책의 일환으로 신설 학교이자 학생 수가 비교적 많은 용황초로 변경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양궁부를 용황초로 이전하게 되었다. 신설 학교이지만 당시 교장이던 임수열 선생께서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체육교육에 남다른 관심이 많았다. 임 교장은 양궁은 올림픽에서도 우승할 수 있는 비전 있는 종목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스스로 자비도 투자하면서 열성적으로 양궁부 활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지도교사는 당시 학교에서 가장 활동적이고 모범적인 교사로서 페스탈로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손상익 선생을 임명하였다. 구본찬(5학년) 학생이 양궁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손 선생이 구 선수를 발굴했기에 가능했다.  구 선수는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하여 끼니를 거를 정도로 어려웠는데 임 교장 선생을 비롯하여 손 선생 등 많은 분이 물심양면으로 구 선수를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중학교 양궁 육성학교인 신라중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본격적인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신라중은 양궁학교로 전통이 있고 비교적 전문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이다.  지도교사인 유상택 선생은 전국 대회 우수한 실적을 거둔 선수를 많이 배출하였기에 아주 우수한 지도력을 가진 베테랑 지도자이다. 구 선수는 지도교사를 잘 따르는 등 다른 학생과 달랐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구 선수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 2015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2관왕, 이번에 남자 단체 양궁 팀이 금메달을 딴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회 후 8년만이다.  필자도 경주여고 교사 시절 양궁 감독을 맡아 전 국가대표 최남옥 선수를 육성하기도 한 양궁 맨이다. 구본찬 선수 신라중학교 재학 시절 본교 교감으로 근무를 하였으며,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 할 때 양궁 육성교를 용황초로 바꾼 장본인이기도 하였기에 무엇보다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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