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대부분의 언론은 첫 호남(湖南)출신의 보수여당대표라는 타이틀로 그의 등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자신도 호남 출신이 보수여당 대표가 된 사실만으로도 큰 ‘혁신(革新)’이라고 했을 만큼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다. 새누리당은 이 대표의 선출을 계기로 4.13총선 패배의 늪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물론 이 대표의 당선을 두고 ‘도로 친박당이 되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흙수저’ 출신이 당대표에 오르고 야권의 텃밭에서 보수여당으로 두번이나 당선한 그의 극적인 데뷔가 그같은 비판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보다 더 희한한 일은 이 대표의 당선이 야권의 움직임에 큰 자극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대표의 출현이 내년 대선에서 야권의 오랜 텃밭인 호남표가 새누리당 후보에게 빼앗길 가능성 때문이다. 이 후보 자신이 호남표의 20%를 가져오겠다고 장담하고도 있지만 새누리당이 대선을 의식한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더민주 측의 발언과 8.27전당대회 당대표후보들의 움직임이 이같은 의중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 당이 호남지지세를 더민주에 넘기지 않겠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같은 호남민심과 관련한 최근 정치권의 이상현상은 결국 우리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지역주의(地域主義)’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미 3김시대의 마감과 청산(淸算)이 이루어진지 수년이 흘렀고 그 결과 이번 20대총선에서는 대구를 포함한 영남지역에 야당후보들이 다수 당선되었다. 호남에서도 재선의 이정현 대표를 포함한 여당후보들이 당선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3김시대처럼 표를 몰고다니는 카리스마 있는 정치지도자가 사라진 영호남은 이미 정치적 선택에서 자유의 공기가 돌고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지역주의 발언이 횡행하는 것은 과거와 같은 거목정치인에 대한 향수같은 것이 남아 구심점 없는 지역주의의 허상을 쫒아 헤매는 습관 같은 짓일지 모른다. 국민의 눈과 민주적 기준에서 본다면 4.13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는 한마디로 여당의 오만과 독선, 그중에서도 ‘친박’을 앞세운 비민주적 공천전횡, 공기업구조조정의 실패와 각종 부패스캔들 등이 원인이었다. 이것이 국민이 총선에서 여당을 심판한 것이라면 여당의 전당대회는 설사 호남출신이 당대표가 되었다하더라도 이같은 국민의 심판에 답하는 진지함을 먼저 보여줬어야할 것이다. 새로운 당대표가 ‘계파는 없다’는 선언만으로 계파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호남출신의 당선만으로 당이 혁신되었다고 본다면 그건 문제의 핵심에 빗나간 것이다. 8.27전당대회를 앞둔 더민주당 당대표후보들의 발언을 보면 호남민심(湖南民心) 얻기가 당을 위하는 핵심사업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4.13총선 당시 국민의 당과의 경쟁에서 호남의석을 뺏긴 더민주당으로선 이 보다 더 급한 일은 없을 것도 같지만 후보 각자의 ‘호남연고’ 주장만으로는 호남민심이 돌아설지도 의문이다. 총선에서 ‘호남홀대론’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했던 국민의 당에게는 호남출신의 차기대권예비후보가 가시권에 없는 더민주당의 노력은 부질없는 헛발질로 비칠 수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호남출신 대권예비후보가 가시권에 없는 상황에도 여야의 당대표는 호남인물이 싹쓸이 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정치권이 차기대선 전략으로 또다른 지역주의의 그림자를 만들려는 것 같다. 지역주의 청산을 입버릇처럼 외쳐온 정치권이 오는 대선에서 또다시 영호남 편가르기로 정치적 기득권을 챙기려든다면 20대 총선에서 처럼 국민이 먼저 지역주의 정당을 청산하는 심판을 내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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