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수필이 있다. 그 글에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라톤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등 주자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오랜만에 마음껏 환호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일부러 버스에서 내려서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일등 주자는 이미 골인 지점에 도착했고 꼴찌에 가까운 후속 주자들의 얼굴을 보면서 잠깐 실망한다. 하지만 꼴찌의 얼굴 표정을 보고 감동한다. 꼴찌주자의 모습은 고통스럽고 고독하지만 위대해 보였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기를 바라면서 그 선수에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일등이 아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가 더 없이 감동적이고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리우 올림픽이 중반을 넘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당초 금메달 10개 종합성적 10위를 목표로 했던 한국 대표선수단의 성적은 예상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스포츠 강국임을 자임하던 대한민국의 위상이 다소 훼손될 상황이다. 모든 선진국들이 겪는 길이지만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해온 그동안의 예로 봐서 국민들의 실망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메달을 기대했던 선수들이 초반에 탈락하는 모습을 보며 악의적 평가를 보내는 국민들이 있다. 특히 SNS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통용되면서 이같은 현상은 두드러졌다. 실망은 하지만 그들에게 비난을 할 수는 없다. 4년동안 오로지 국민들을 대표해 올림픽 무대에 서기 위해 흘린 땀의 대가가 그것이라면 앞으로 어느 누구도 대표선수가 되겠다고 운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 박완서 선생의 글은 우리 국민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 선수들, 또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국민들은 그 결과가 어떤 방식이었던 존중받고 찬사를 받아야 한다. 승부를 초월해서 정정당당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위대하다. 모든 스포츠는 파인플레이가 더 귀한 가치다. 그것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현상에서도 적용된다. 타인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정정당당함이 사라지는 세상에 스포츠맨십이 더욱 중요해졌다. 최선을 다해 땀흘리고 완주한 마라톤 선수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하는 구성원이 많아진다면 그것으로 갈채를 받을만하다. 이상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