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살면서 내가 자주 찾는 절에 '분황사(芬皇寺)'가 있다. 시내 가까워서 좋고, '국보 30호' 모전석탑이 있고 언제나 고즈넉하고 고졸한 절 분위기가 있는 분황사, 그리고 원효 선사의 '화엄경' 스토리가 숨 쉬고 있고, 이름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절' 분황사! 그런데 내가 분황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향가,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에 얽힌 '희명(希明)'이야기가 그 기적의 스토리가 있는 절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광전(普光殿) 앞, 지금은 빈 터로 잔디만 깔려 있는 넓은 절터를 보면서, 혼자 상념에 잠겨 본다. '혹시 저 빈 터가 분황사 북쪽 왼편 전각 터가 아닐까? 왼편 전각 북쪽 벽의 탱화(左殿北壁畵), '솔거'가 그린 유명한 '천수천안관음보살' 관음전 벽화가 저 곳 어디쯤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나대로 몽상을 해 보는 것이다. 천재 화가 솔거의 그림이 얼마나 찬란하였길래 놀라운 기적을 일으켰을까? 원효 선사와 솔거는 생전에 대화도 좀 나누었을까? '희명'(希明)이 살았다는 '한기리'는 어딜까? '한기리'에 사는 그녀도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도, 다섯 살 난 아이의 손을 잡고, 천수 관음전으로 땀 흘리며 걸어갔을 것이다. 오직 눈 먼 자식의 개안을 간절히 바라면서…기도를 하고 또 했을 것이다.  서라벌 한 여자의 아름다운 모성애가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나는 향가,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이야기를 떠 올린다. 경덕왕 때 '한기리'에 사는 여인 '희명'의 다섯 살 난 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었다. 어느 날 부인은 아이를 안고 분황사 왼쪽 전각 북쪽 벽의 천수대비 앞에 나아가 아이로 하여금 노래를 지어 기도하게 한다. 그랬더니 어느 날 아이가 눈을 떴다. 기적이다! 어머니 '희명'의 지극한 정성으로 기적이 이루어진 것이다. 희망이 없는 시대라도 정성은 언젠가 기적을 낳는다!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비옵나니 1천 손 하나를 내어 1천 눈 중 하나를 덜고 둘 다 없는 이 몸에게 하나만이라도 주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오시면 그 자비 얼마나 크리오  -삼국유사,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 울림을 주는 향가다. "1천손 하나를 내어 1천 눈 하나를 덜고/둘 다 없는 이 몸에게 하나만이라도 주옵소서/ 아아, 나에게 주오시면/ 그 자비 얼마나 크리오" 감동적이다. 나는 모전석탑 앞, 대종각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자비함'엔 '1인 일타 1,000원 이상' 이라고 글이 적혀 있다. 큰 종의 몸에 향가 '도천수대비가(禱千手大悲歌)'가 돋을새김 글로 새겨져 있다.  천수천안관음 보살은 천개의 손안에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관음보살님께 나도 기적을 빌고 싶다. 모전석탑 저 쪽에서 원효 스님의 화엄경 염불소리가 들릴 것 같은 오후다. 일연 선사는 유사의 기록 끝에, 칠언 절구의 한시(漢詩)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남기고 있다.  "밭고랑에서 대나무말 타고 파잎 피리 불며   뛰놀더니 하루아침에 두 눈 잃어 버렸네  보살께서 자비로운 눈 돌려주지 않았다면  버들 꽃 피는 봄날을 얼마나 헛되이 보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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