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걷다보면 익숙하지 않은 ‘주민센터’ 이름을 만나거나 생소한 도로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변하면서 동네 이름도 바뀌고, 골목길도 새 얼굴에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단지 이런 변화들을 발 빠르게 쫓아가지 못하는 나의 기억들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더욱이 거리마다 빼곡히 들어 찬 간판의 상호들은 하루가 다르게 교체되어 낯선 간판과 마주할 때면 마치 내가 이방인이 아닐까 싶은 착각에도 빠진다. 아리송한 의미의 상호를 볼 때면 내가 혹시 먼 시간을 여행하여 찾아온 시간 여행자가 된 듯 신기해하기도 한다. 기억 속의 풍경들이 어제 본 듯 또렷한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이처럼 낯설고도 어색하며, 때로는 불편하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추억이 있고, 추억은 장소와 음식 등 다양한 메소드를 통해 더욱 절실하게 부각된다. 그것은 마치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단어처럼 내가 살아 온 땅의 고유한 언어들 속에서도 울컥 떠오르거나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신작로를 달려가던 사금파리 같은 어릴 적 꿈들이 술잔에 내려앉기라도 하면 풀꽃반지를 툭 던져주고 달려 가버린 어느 소녀의 안부가 그리워 술맛은 더욱 깊어지지 않던가.요즘처럼 땡볕 드는 여름날엔 아이스박스의 뽀얀 김만으로도 기분까지 서늘해지던 ‘부산케키’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놈을 한 입 베어 물면 팥의 맛과 차고 딱딱한 얼음의 냉기가 입 안에서 온 몸으로 녹아들었다. 바람 많이 부는 겨울날에는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찐빵을 봉지에 담으며 설탕을 뿌려주던 ‘역도산빵집’의 주인아저씨 얼굴도 떠오른다.하물며 경주라는 땅은, 발길 닿는 데마다 유서 없는 마을이 없고, 마을 들머리엔 푸른 전설이 느티나무를 친친 두르고 있는 그런 곳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이런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마치 무엇에라도 씌운 듯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에게는 ‘김기문’ 시인이 그런 사람이었다. 월남전에도 참전한 용사이면서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병상에서 손 글씨로 스무 매의 원고를 한 번도 고치지 않고 물 흐르듯 써내려가던 글쟁이였다. 후배들에게 형 같은 정겨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순박한 경주의 언어로써 마음을 토해내던 향토시인이었다.그에게 경상북도문화상을 안겨준 시집 ‘토함산 그늘’에는 고등학교 다닐 때 한 번 듣고 외어버린 시 ‘순이야 순이야’가 있다.네가 와 내 마음을 모르노네가 와 내 마음을 모르노한 자 깊이 몸속이물속보다 깊다더니참말로 네는 네는 눈이 멀었제네가 와 내 마음을 모르노내가 와 내 마음을 모르노 김기문은 시인이면서 경주의 옛 땅 이름들을 찾아 구석구석을 누비던 ‘인문학자’이기도 했다. 잊혀져간 땅의 이름들을 찾아 다시 불러주고자 한 사람, 하여 그는 ‘경주풍물지리지’라는 베개 두께의 역사인문지리서를 내놓았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경주의 골짜기와 마을마다 그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한 마을에서 오래 살아온 어르신들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현장을 확인한 뒤 각종 지명과 자연부락의 명칭, 전설, 설화, 민요, 심지어 당산나무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시간에 대해 그는 조사하고 정리했다. 어느 음료회사의 사장은 자신의 피에 그 음료가 흐른다고 말했다는데, 그의 피 속엔 아마도 경주의 눈물과 향과 맛이 흐르지 않았을까.1991년 초판이 나온 후 2006년에는 그 동안 변화와 부족한 자료들을 수정 보완하여 증보판까지 내놓았다. 나는 그가 증보판 작업을 할 때 아주 작은 부분에서 그를 도우며, 그가 일하는 모습과, 그의 얼굴에 흐르던 땀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흡사 한 분야에 인생을 던져 그 뿌리에 닿아 있는 장인의 얼굴 같았다. 들판이나 골짜기의 이름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고, 지명에 얽힌 유래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자 애쓰는 모습에선 대동여지도를 그리던 고산자(古山子)의 얼굴이 그러했을까, 떠올려보았다. 그는 작업의 피로 때문에 눈의 실핏줄이 터져 고통스러웠으나 글자 한 자 한 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우리는 내가 살아가는 땅과 몸과 삶이 다르지 않다는 말을 의미도 깊이 새기지 않은 채 쉽게 내뱉는다. 그러나 땅의 이름을 알고, 그 땅의 말로써 노래하는 일에 우리는 한없이 게으르다. 게다가 이런 게으름이 가져다줄 재앙에 대해 아무도 경고하지 않는다. 대체 우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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