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리우 올림픽 폐막식이 끝난 후였다. 한 아버지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지금까지 캡처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금메달을 딴 선수의 감격스러운 얼굴을 본 소년이 4년 후, 저 선수가 또 금메달을 딸 수 있을까요? 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글쎄… 영원한 승리는 없단다. 소년은 시무룩해져서 또 물었다. 언젠가는 질 수밖에 없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는가요? 아버지는 다섯 고리가 얽혀 있는 올림픽 '오륜기'의 정신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승리보다 인류의 화합과 평화를 기리는 올림픽 정신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메달을 따기도 지키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하자 '실적'을 내지 못한 수많은 선수의 꺾인 열망이 안타까운 거였다. 예선에 탈락한 선수나, 메달 권에서 밀려난 선수의 모습은 소년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들은 어깨가 축 처졌고, 힘없이 걸었고,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국민의 열망에 못 미쳐 송구하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듯했다. 간발의 차이로 선택받는 '천국'과 '지옥'의 상황을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또 물었다. 아빠, 메달을 못 받은 선수는 어떻게 되나요? 4년 동안 준비를 하는 거지. 4년 후, 또 메달을 따지 못하면요? 넌 일등을 못 했다 해서 다음 시험 준비를 포기할 거니? 그래도 계속 공부를 할 거 아니야? 새로운 지식과 세상의 지혜를 얻기 위해 평생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너도 말하지 않았어?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는 한 힘닿는 대로 열심히 준비하겠지? 소년은, 승리에 집착한 한 선수의 불운한 얼굴을 뚫어지게 봤다. 그 선수는 다시 영광을 찾지 못했다. 자신의 실패가 어이없었던 선수의 좌절한 모습을 본 소년이 기운 없이 말했다. "아빠, 나도 노력해봤자, 일등은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올림픽도 인생과 다름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적절한 예가 떠오르지 않았다. 동영상이 끝날 때쯤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찌푸린 그 얼굴을 펴고 아빠 말을 잘 들어 봐. 경기에 진 선수, 그러니까 실패한 선수라 해서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지 않니?" 아들은 그래도… 하며 세상은 성공한 자, 이긴 자만이 주목받는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낙심한 듯 말했다. "얘야, 혹시 넌, 내가 가난한 아버지라서 인생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에 아빠가 말이다. 네가 일등을 하지 못했다고, 일류 대학을 가지 못했다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세상에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고, 네가 삶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겠니?" 소년은 펄쩍 뛰듯 그 말을 부정했다. "아니에요. 아빠, 아빠는 내게 그럴 분이 아니에요"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었다. "너,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 읽어봤지? 어떤 청년이 그 책의 소감을 말하는 걸 엿들었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봐." 총명하고 상냥한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산티아고 노인은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지?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커다란 청새치를 잡지만, 항구로 돌아오는 길에 모두 상어에게 뜯어 먹혔지? 청년이, 그게 뭐야! 바보 노인 아니야. 너무 허탈하잖아! 아예 잡지를 말지. 하더구나. 그건 마치 고생만 하고 메달도 못 받았구나. 국가대표 선수에서 탈락했구나. 운동 그만둬! 하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니? 84일이 아니라 자그마치 4년, 1,460일 동안 뼈만 남은 청새치를 끌고 왔다고 선수들을 핀잔하는 말로 들리더구나. 마치 이 아빠가 40년, 자그마치 14,600일 동안 후줄근한 삶을 살아왔다고 비웃는 것처럼 말이다. 노인이 물고기와 격투하는 장면에서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면 책은 읽으나 마나지. 넌 어떻게 생각하니?" "아빠, 산티아고 노인을 존경한 마놀린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아요. 피나는 훈련을 멈추지 않는 선수들이 정말 산티아고 노인과 같네요. 아빠 역시…" "그래, 어떤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가면 돼. 산티아고 노인이 상어 떼가 달려든다 해서 잡은 청새치를 바다에 던지고 달아났다면 노인의 마음에는 나약한 자신의 모습만 남아 삶이 더 쓸쓸해지겠지? 진실한 삶의 태도와 용기가 진정한 승리자를 만든단다" 소년의 뺨이 발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저녁별이 소년의 손을 잡으려고 창문을 넘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