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연재까지는 ‘요하문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를 하였다. 이제부터는 요하문명의 각 고고학 문화에서 발견된 중요한 유물들을 몇 가지 소개하면서 요하문명의 중요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요하문명에서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고고학문화인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7000 - B.C. 6500)의 경우에는 중요한 유적이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놀랄만한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흔히 보이는 ‘토기’와 ‘마제 도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하서문화에 이어지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 - B.C. 5200) 유적에서는 세상을 놀라게 한 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오늘은 우선 특이한 형태의 옥으로 만든 귀고리인 ‘옥결(玉玦)’에 대해서 소개하기로 한다. 옥결은 옥으로 만든 귀고리의 일종으로 원형의 옥환 한쪽이 터져 있다. 옥결은 귀에 구멍을 뚫어서 옥결을 끼워서 착용하는 귀고리이다. 흥륭와문화에서 발견된 옥결은 세계 최초의 옥결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옥결은 세계 어디에서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 (1) 중국 동해안 지역과 그 연장선상에 있는 동남아 일대, (2) 한국 (3) 일본에서만 보이는 특이한 형태의 귀고리이다. 중국에서는 흥륭와문화에서 8000년 전의 옥결이 발견되면서 이것이 세계 최초의 옥결임을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중국에는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옥기가 발견되기 때문에 평생을 고대 옥기만 연구하는 ‘고옥전문가’들이 많다.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소장인 왕외(王巍) 선생이나, 홍콩 중문대학의 등총(鄧聰) 선생 등은 세계적으로 이름 있는 고옥전문가다. 흥륭와문화에서 세계 최초의 옥결이 발견되자 등총은 옥결의 중국 지역으로의 전파과정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1) 요서 지역 흥륭와문화에서 기원전 6000년경에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2) 기원전 5000 – 4000년경에는 장강 유역까지 (3) 기원전 2500년경에는 광동성 광주(廣州) 주강(珠江) 유역까지 (4) 기원전 2000년경에는 베트남 북부까지 (5) 기원전 1000년경에는 베트남 남부 지역까지 전파된다는 것이다. 곧 시간차를 두고 중국의 동해 연안을 따라 남하한다는 것이다. 왕외는 옥결이 일본으로 전파되는 루트를 연구하였는데, (1) 하나의 루트는 요서 지역 흥륭와문화 지역에서 연해주 → 일본의 북해도 → 일본 본토 → 일본 남부 구주까지 연결되며 (2) 다른 루트는 흥륭와문화 지역에서 중국 동해안을 따라 장강(=양자강) 하류까지 연결되고 이어서 해로를 통해서 구주와 본토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등총이나 왕외는 한반도를 통해 일본으로 연결되는 루트를 설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성군 문암리유적에서는 흥륭와문화와 같은 기원전 6000년경에 흥륭와문화 옥결과 거의 똑같은 옥결이 이미 발견되었고, 남해안 여수 안도패총에서도 기원전 4000-3000년경의 활석제 석결(石玦)이 발견되었다. 필자는 동북아시아에서 옥결이 요서 지역 흥륭와문화에서 출발하여 3갈래의 전파 루트가 있었다고 본다. (1) 첫째는 등총의 논리처럼 만주 일대에서 중국 동해 연안을 따라 산동반도 지역 → 장강 유역(일부는 강장 유역에서 해로로 일본 구주와 본토로 이어짐) → 광주 주강 유역 → 베트남 북부와 남부 등으로 이어지는 루트이고 (2) 둘째는 한반도 쪽으로 남하하여 한반도 동해안 지역 → 남해안 지역 → 일본 본토와 구주로 이어지는 루트이고, (3) 셋째는 왕외의 논리처럼 만주 일대 → 연해주 → 일본 북해도 → 일본 본토 → 일본 구주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이러한 옥결의 분포는 요하문명이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는 필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자료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