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모질게도 더웠다. 며칠 전 '모기의 입도 비틀어진다'는 처서(處暑)도 지났다. 엊그제는 모처럼 기다리던 단비가 온 대지를 촉촉히 적셨다. 정말 온 몸을 두들겨 맞아도 좋을 단비였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 했습니다"를 생각하며 나는 오늘 가을바람을 동무삼아 경주의 들판을 걷는다. 가을속의 '영묘사(靈廟寺'를 찾는다. (현재의 '흥륜사'에서 '영묘사'라는 명문이 있는 기왓장이 수습되어 '흥륜사'를 '영묘사'로 추정) 선덕여왕 4년에 창건 했다는 절, 신라 '수이전(殊異傳)'에 나오는 '심화요탑(心火遶塔)'이야기를 떠올리며 걷는다. 선덕여왕을 짝사랑한 끝에 상사병이 난 '지귀(志鬼)', 이를 안 여왕이 그를 절에서 만나고자 했으나 '지귀'는 탑 아래서 여왕을 기다리다 잠이 든다. 영묘사에 행차한 여왕은 불공을 마치고 자고 있는 '지귀'의 가슴위에 여왕의 팔찌를 빼어 놓고 귀궁(歸宮) 한다. 잠이 깬 '지귀'가 여왕의 팔찌를 보고 환희의 마음에서 '심화'(마음의 불)가 일어난다. '지귀'는 탑을 돌다가 안타깝게도 불귀신이 된다, 나는 남천 변을 따라 걷는다. 화려한 쇼팽의 '피아노 연습곡 작품 10-1번'을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천천히 가을 길을 걷는다. 초록 들판의 풀잎들이, 쇼팽의 피아노곡처럼 싱그럽게 출렁인다. 천 년 전, 월성 왕궁을 나온 여왕의 가마 행차도 이 길을 지나 '영묘사'로 갔을까? 화려한 옷자락을 끌고 가는 여왕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재매정' 앞길을 지나니 '포석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오릉 숲'이 보이고. '오늘은 책방'이라는 이쁜 '북 카페'도 새로 생겼다.  '국당마을' 돌비석이 있는 골목을 꺾어드니 '영묘사' 절의 돌담이 길게 이어 진다. 길 곁으로 어느새 벼가 익어 가고, 배추, 고추,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돌담길을 우측으로 꺾어 돌아가니 새로 낸 절 입구와 넓은 주차장이 나타난다. '심화요탑'의 지귀 설화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지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활리역'에 살았다는데 '활리'는 지금 어딜까? 지귀는 요즘말로 '노숙자'가 아닐까? '정신(맛)이 살짝 간사람'? 그 당시 여왕의 얼굴을 평민으로서는 보기가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여왕과 드라마틱하게 만날 수 있었을까? '지귀설화'는 신라시대 절의 화재를 막기 위한 '액막이용'의 설화가 아니었을까?  왜 '영묘사'엔 불이 자주 났을까? 유명한 '혜공(惠空)' 스님의 '새끼줄 사건'도 영묘사가 배경이 다. 나는 한적한 경내로 들어간다. 스님도 보이지 않고 염불소리도 없다. '법당 가는 길'이 조금 높은 곳에 있다.  이곳이 옛 금당 터? 대웅전 앞에 서서 잠시 하늘을 본다.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에 나오는, 겨울에 개구리가 울었다는 '옥문지', 그 연못은 어디쯤일까? '지귀'가 여왕을 기다리다 잠든 '목탑'이 있던 곳은 어디쯤일까? 절터 중앙 마당에 웬 돌탑이 하나 서 있다. 16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예언을 알아맞힌 신령스러운 여왕, 나는 절간 뒷 터에 버려져 있는 거대한 신라적 주춧돌에 기대어, 맑은 경주의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불현 듯 어디선가 잔잔한 슬픔이 흰 구름처럼 밀려온다. 아, 허무하게 지나간 인간들의 꿈결 같은 사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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