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고대도시 페스의 메디나는 발 디딜 틈이 없다. 메디나는 이슬람 세계의 골목길을 의미하며 페스의 메디나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가장 유명한 골목길이다. 두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미로와 같은 골목에서 우리는 모로코의 중세를 마음껏 즐긴다. 메디나에는 오랜 세월 그들의 체취가 묻어 있는 가옥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풍광들이 펼쳐진다. 노새가 자기 몸뚱이보다 큰 물건을 싣고 여행자들의 발길을 가로막으로 지나가고 길 양편의 북아프리카인들의 삶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물건들이 쌓여 있다. 메디나에는 밤낮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들락거린다. 종일 여행자들의 웃음과 흥정, 동행자를 부르는 높은 목소리에 시달리면서 상인들과 주민들이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을 이어간다. 간혹 여행자들이 물건을 집어 들고 지갑을 열면 한없이 기뻐하고 낡은 집을 수리해서 만든 게스트하우스에 여행자들이 짐을 풀면 이부자리를 본다. 그들은 왜 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수백년 그 모습대로 살아갈까.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 문화의 관성이라고 말해도 무관하겠지만 그들이 가진 문화적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오랜 세월 축적된 그들의 문화를 그대로 지켜나가겠다는 고집과 자신들의 문화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는 자신감이 농축된 곳이 바로 메디나다. 그 결과 지금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고 그 지역의 사람들은 골목길 하나로 생활을 영위해 간다. 경주는 가장 경주다운 손금을 지운지 오래다. 바로 '쪽샘지구'다. 이유야 어쨌든 그 골목은 근대의 경주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었다. 정부와 경주시는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위대한 자원 하나를 인멸해 버렸다. 다시 그와 같은 자원을 가지려면 수백년의 세월이 걸린다. 그곳에 공원을 만들고 대형 상점과 식당을 만든다고 해서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상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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