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껍하다'는 경상도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경남 지역에서는 이 말과 함께 '시껍묵다'도 쓴다. 보통 '혼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크게 놀라다', '경을 치다', '혼쭐나다', '고생하다' 등과 같은 좀 더 강렬한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읽기는 그렇지만 정확한 표현은 십겁(十劫)'과 '식겁(食怯)'이다. '십겁(十劫)'은 '정토교에서, 법장보살이 수행을 완성하여 아미타불이 된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을 이르는 말'이며,장시간을 의미한다. 식겁(食怯)하다'의 '식겁'은 '겁을 먹음'이라는 뜻이다. 뜻밖에 놀라 겁을 먹는 것이 '식겁'이다. '식겁하다'는 '겁먹다'와 의미가 같다. 기성세대는 흔히 이 '식급'이란 용어를 쓴다. 그런데 이 용어가 최근 정치권 구도인 야대여소(野大與小) 정국에 견주면 한치도 오차없이 딱 맞을 성 하다.이를 '식급정국'이라 해도 무방할 것 같다. 20대 정기 국회에서 여당이 야당에게 식겁하고 있다. 비단 국회 내에서 뿐아니라 향후 정국에서도 여당이 식급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지난 총선에서 여당 참패로 야권이 비대해 졌다. 특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여권과 권부는 야권이 비대해 지면 불편한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군사정부나 문민정부 관계없이 야당은 시시때때로 여당과 청와대를 향해 딴지를 건다. 국회 표결 문제,예산 문제,인사청문회,반대를 위한 반대 등 청와대와 여권은 골머리를 앓는다.  서슬이 퍼런 군사정부 시절에도 여권은 야당와 정국을 논의하기위해 음지(陰地)에서 노련한 여권고위관계자나 청와대 정무 기능이 현안을 풀기위해 음성적인 거래하는 등 시대적 나름의 '정치 문화'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모든 것이 투명해지고,음지 정치행위는 추억이 되버렸다고 옛 정치인들은 말한다. 거야(巨野)의 위력이 지난 1일 20대 첫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터졌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당적(黨籍)은 더민주당이다. 개회식에서 정 의장은 "티끌만한 허물도 태산처럼 관리해야 하는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이 그 직을 유지한 채 검찰 수사를 받는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여야는 정기 국회기간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기관 설치 문제를 논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특히 그는 사드문제와 관련, "사드 배치 불가피성을 떠나 우리 내부에서 소통이 전혀 없었다"고 여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정 의장은 이 발언에 대해 새누리당은 거센 반발과 함께 집단퇴장을 하는 등 실력행사를 했다. 그리고 정 의장의 '개회사'를 폭거(暴擧)로 규정하고 사퇴촉구결안을 채택했다.한마디로 '야대여소' 정국의 민낯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현장이 된 셈이다. 역전(逆轉)도 이런 역전이 없다.여당 원내대표가 의장석 앞에서 항의하고. 떼거지로 의장실을 찾아 항의하는 등 야당의 고정물을 여당이 재현했다. 정기 국회가 열리면 의장은 개회사에서 "국회가 진정한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대의정치(代議政治)의 본산(本山)이 되어야 하다", "의회정치에 필요한 여야 관계는 정치적 차원이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협조해야 한다", "당파적 이해(黨派的 利害)를 조정해야 한다" 등 아주 원론적인 덕담수준으로 말한다. 그런데 거야(巨野) 출신 국회의장 취임 후 처음 열린 정기국회 개회사 변은 여당과 청와대를 '식급'시킬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의 발언이 입법부 수장으로서 적절치는 않다. 하지만 유사 사례는 박근혜 대통령 임기 동안 수시로 발생할 것인데 '소여(小與)'가 어떻게 대처할지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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