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깊은 오지 마을이나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 우묵한 금단의 왕국, 심지어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에 이르기까지 외국인 여행자들이 길을 찾는 데는 불편이 없다. 곳곳에 '이정표'를 세우고 '자국어'와 '영어'를 병기해 길을 안내한다. 그 안내 표지판이 나무로 만들었거나 함석으로 만들었거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조악한 재질의 표지판은 여행자들이 여정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된다. 깊은 밤, 손바닥만한 마을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가로등 불빛이 가물거리는 길거리에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가 노숙할 염려는 없다. 거의 비슷비슷한 형태의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도 그 가운데 반드시 숙소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그 표지판에도 영어는 필수적이다. '식당'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자국어로 빼곡하게 써놓은 메뉴에 사진을 곁들였다. 사진으로 짐작해서 음식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알아보지 못하는 문자 아래 영어로 된 음식 이름과 그 음식에 들어가는 주된 재료를 친절하게 곁들여 써뒀다. 하루에 한 두 사람이 오거나, 그렇지 않은 식당들에도 그 관례는 어김이 없다. 우리나라 유력 일간지의 기획 시리즈 '업그레이드 관광코리아'에 우리나라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영어라고는 'NO Smoking'과 'Toilet' 밖에 없다는 외국인들의 푸념을 소개했다. 이정표에는 영어를 같이 썼지만 그 외의 대부분의 간판에는 한국문자로만 표기돼 외국인 여행자들이 적응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외국인들은 '시내버스를 타는 것은 공포 그 자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시내버스는 한국어와 중국어, 일본어로만 목적지를 표기한다. 그리고 안내 멘트도 없다. 심각한 일이다. 심지어 식당에 가서 음식을 고를 때는 '복권을 긁는 기분'이라고 고백했다. 도무지 어떤 음식을 시켜야할지 우왕좌왕하는 외국인을 보는 것은 우리나라에 흔한 일이다. 경주와 같은 우리나라 대표 관광도시에서 이같은 문제점은 없는지 따져볼 때다. 이상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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