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토시(京都市)에 가본 사람은 '교토'와 '경주'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알 것이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교토는 대단히 잘 가꾸어진 현대적인 도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천년고도(千年古都)의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잘 보존되고 정비된 도시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주라는 지명 앞에도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修飾語) 역시 '천년고도'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 경주에는 천년고도의 정취를 강하게 느낄만한 가시적(可視的) 유적도 거의 남아있지 않고, 일본의 교토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만한 특별히 고풍스러운 거리도 없다.  경주 도심은 과거의 난개발(亂開發)을 알게 해주는 콘크리트 건물들이 어지러운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여기 저기 도심 가운데 불쑥불쑥 솟아있는 큰 무덤들만이 어렴풋이 옛 기억을 더듬게 하고 있을 뿐이다. 관광지구인 보문을 가보아도 인공으로 만들어진 호수 주변으로 몇 개인가의 현대식 호텔들이 잠자는 숙박촌을 이루고 있을 뿐, 유서 깊은 천년의 정취를 느껴보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나마 옛 신라의 흔적을 조금은 느껴볼 수도 있을 것 같은 석굴암에서 불국사로 이어지는 유적지구인 불국동 일대 마저도, 과거 수학여행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 난개발 된 숙박업소나 식당들만 주로 난립해 천년의 향기와 신라의 달밤을 만끽하기에는 그리 적합한 장소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경주에는 고도보존법(古都保存法)이라는 것이 있고, 한옥지구와 아파트 지구가 나누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경주시내를 조금만 면밀히 살펴보면 한옥(韓屋)같은 양옥(洋屋)과 양옥같은 한옥이 혼재(混在)되어 있다. 또, 국적불명 형태의 건물들까지 뒤섞여 도무지 여기가 그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고도(古都)라는 느낌을 받기에는 분명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에서는 유적지구 보존에 묶여 도심에 위치하면서도 넓은 공터로 방치되어 있거나, 세월없는 발굴작업 현장이 되어 도시 미관은 아예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고대도시 미관상의 스카이라인 유지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판 고층 아파트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고 있다. 이대로 수 십 년 후, 아니 수 년 후 경주의 모습이 어떨지? 자못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경주는 고고학자들의 소일(消日)터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개발 이득만을 노리는 외지 자본가들의 '투기장'이 되어서도 안 될 것이다. 경주는 우선 잊혀져가는 천년의 스토리텔링부터 먼저 복원되고 개발되어야 하다. 그에 따라 스토리텔링이 살아있는 도시로 재건되고 정비되어야 비로소 천년의 향기가 되살아나고, 경주의 미래가 약속될 것이다. 경주는 원래 건축물에 대한 고도제한(高度制限)이 엄격했던 도시로 알고 있다. 어느 때인가 황성동이나 용강동 등이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특정 주거지역에 대한 고도제한이 완화되는 듯싶더니, 근래에는 여기저기 고층 아파트들이 정신없이 들어서서 경주시의 스카이라인이 고층 아파트의 실루엣으로 변해가고 있다. 도시 개발 자체를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천년고도의 이미지가 고층빌딩들의 그늘로 사라져가는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왜 일본의 교토시와 같은 천년고도 관광도시를 만들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황성옛터에 밤이 오니 윌색만 고오요해' 황성동 아파트 단지의 어느 노래방에서 들려오는 어떤 취객의 노래소리가 불야성 황성동과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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