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동궁과 월지는 이제 대한민국 관광지 가운데 대표적인 명소 반열에 올랐다. 경주를 찾는 여행자들은 어김없이 사시사철을 막론하고 그곳을 찾는다. 동궁과 월지가 갖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와 그 유적이 가진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야경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면서 조명이 켜지는 밤이면 그곳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젊은 여행자들은 곧바로 자신의 SNS에 올린다. 동궁과 월지는 비교적 성공한 관광지다. 아직 신라 왕궁이 복원되지 않았지만 그때까지 동궁과 월지는 신라의 옛 모습을 즐기는데 유용할 것이다. 첨성대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두 가지 신라의 문화유적을 즐기는데 쾌적한 환경을 가진다. 그리고 두 유적 사이에 조성된 화훼단지는 현대적 매력까지 더해줘 금상첨화다. 그리고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 반월성의 비탈에 비친 조명은 고도가 가진 품격을 나타내는데 적당하다. 대부분의 유명 역사문화도시는 야간 경관에 엄청난 공을 들인다. 특히 역사적 가치를 가진 건축물이 있는 도시는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기 위해 조명 장치를 한다. 경주도 그 예를 따르고 있다. 하지만 야간경관은 체계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 한 장소에만 특성에 맞게 조명 처리를 한다면 각각의 조명이 따로 논다. 야간 경관은 그 도시의 전체적인 밤풍경을 결정짓는다. 일률적이고 조화로운 조명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따라 조도와 색상을 결정해야 한다. 연말이 되면 경주시가지를 휘감는 트리조명은 가관이다. 연말연시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두 달 넘게 경주의 밤풍경을 장식하는 싸구려 조명은 천년고도의 품격을 실추시키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처럼 아무런 기준 없는 경관계획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황성옛터를 기대했던 여행자들이 경주의 밤하늘에 뜬 별들을 볼 수 없다면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는 일이다. 트리조명은 시가지 중심에 한두 개 설치하면 가장 적당하다. 예산도 아끼고 품위도 지키는 일이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