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때론 쭉 뻗은 신작로였다가 오솔길이었다가 호젓한 산길이 되기도 한다. 길을 걸어가며 만나는 이국의 이색풍경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유목민의 기쁨을 생각한다. 길 위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고 사람이 풍경인 아름다운 길 위에는 언제나 치열한 삶이 있다. 완벽하게 풍미되는 삶을 생각하며 길을 걸어가는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딸, 며느리, 엄마, 남편, 이름 등 많은 수식어로 살고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신분의 소중함을 잊고 살 때가 많다. 그런데 여행을 하며 자신을 가장 꼼꼼하게 각인 시켜 주는 것이 여권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나라에서 나의 신분이 보장되지 않으면 비행기나 배를 탈수가 없다. 수많은 난민들이 자기를 보증해줄 나라가 없어 국제미아가 되어 표류하는 뉴스를 보면서, 상대국의 직원이 나를 알아주는 희열을 느끼며 공항을 드나드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까 안경을 벗고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살짝 미소까지 지으며 통과 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입국심사대를 유유히 빠져나오면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한국여권으로 비자 없이 갈수 있는 나라가 172개국으로 세계3위로 인정받는 나라다. 그래,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야.  관광 유적지를 가기위한 버스에서 아주 세련된 청년이 옆자리에 앉는다. 그 청년에게 살짝 미소를 보내니 그 청년도 인사를 한다. 청년이 태블릿을 꺼내는데 삼성제품이다. 이국에서 멋진 청년이 대한민국 기업이 만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니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런데 유적지 올라가는 수백 킬로 양쪽 길을 삼성광고 깃발로 장식되어 지나는 길손에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없는 기업광고를 여기에서 보다니 가슴이 먹먹했다. 기어이 그 청년에게 태블릿은 삼성이 만들었고 여기 보이는 깃발이 삼성인데 그 삼성은 우리나라 대한민국거야 이렇게 주책을 부리고 말았다. 그 청년이 코리아 남쪽 코리아 연발로 호감을 표시하며 관광안내를 자청해 주어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그래,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야. 여행지의 여러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침대에 누우면 내 시야에 꽂히는 것은 LG 아니면 삼성 텔레비젼이다. 우리 집도 아닌데 우리나라 제품이 호텔방을 차지하고 나를 반기고 있는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전자제품 가게에는 우리의 TV가 가장 중심자리에 있고 현대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도로에 꼬리를 이으며 달리고 있다. 20년 전에 내가 본 유럽의 상점에서는 노동집약적 제품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발전되어 휴대폰 가게가 우리를 반기고, 공항과 백화점의 대형 홍보용 제품이 폼을 잡고 드나드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잡고 있었다. 유럽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IT 강국의 대단한 국민이니 깔보지 말라고 큰소리 치고 싶은 나는 그래, 대한민국 국민이야. 누구나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느끼는 자유를 꿈꾸지만 실천할 수 있는 자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삶의 쳇바퀴를 벗어나는 눈 질끈 감는 용감한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가끔씩 내가 딸, 아내, 며느리, 어느 나라의 국민으로 의무와 책임을 다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또는 그 것을 잊고 살지는 않는지 고민해보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하면 우리 미래 세대는 암울해진다. 세계는 날고 있는데 우리는 집안싸움으로 날, 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누구일 때 말과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 어릴 때는 이름이 절대적이었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명함에 적힌 직함이 이름을 압도할 때가 많다.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 가는 것, 오늘도 나는 누구인가 화두를 가지고 거리를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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