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저녁 시간을 넘겨 허기가 조금 돌 때였다. 동료 기자와 만나 경주 용강동 대로변에 있는 선술집을 찾았다. 안주를 요기로 삼을 겸 문어 꼬치와 맥주 두 병을 주문했다. "추석 명절 잘 보내고 자주 봅시다. 장 기자." 덕담에 힘입어 한가위 보름달을 안주 삼아 짠(건배)을 하던 찰나. "그르릉" 하는 짐승울음 소리 같은 굉음과 함께 오른손에 쥔 맥주잔의 술이 파도 타듯 요동쳐 흘러넘쳤다.  '큰일이 났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갑작스러운 땅 울림으로 혼비백산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때가 일곱시 사십여 분께. 우리는 누가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술잔을 내려놓고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며 각자 신문사의 편집국으로 향했다. "티비 틀어봐, YTN 돌려, 전쟁 난 거 아니야, 119 신고해" 등등 겁먹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대로변까지 흘러나왔다. 대로변에는 여기저기서 자동차에 급하게 시동을 거는 소리와 액셀러레이터 밟는 굉음, 음식점에서 뛰쳐나와 발을 동동 굴리는 사람, 또 전화기를 붙잡고 울먹이는 여학생들까지, 난생처음 겪는 큰 지진의 공포 탓에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이었다.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 "기사님 황성동 서라벌여중 앞으로 가주세요"라고 다급히 말했다. "손님 난 도로가 뱀처럼 휘는 거 처음 봤어,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안 서더라니깐 손님 내리고 나도 가족들 챙기러 가야겠다." 그렇게 택시기사와 대화를 나누며 용강동을 빠져나와 회사 앞에 도착했다. "띵동" 아무 생각 없이 1층에 내려진 회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을 때 천장 위 형광등 가림막이 무너진 걸 확인할 수 있다. '지진이 나면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 안전할 텐데 왜 탔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회사 편집국은 여기저기서 걸려 오는 벨 소리와 기자들의 격조 된 통화음량, 팩스 신호음, 프린트 출력음 등으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장 기자 여기 전화해서 물어보고, 피해 접수 어떻게 됐어, 사진은 확보된 거야? 기사구성은 이걸 이렇게 하라고!" 등등 취재 지시사항이 쏟아졌다. 텍스트를 열어 '경주시 내남면 부지리 규모 5.1 지진 발생 등…'을 타이핑하던 중 또 한 번 "그르릉"하는 짐승울음이 등줄기에서 부터 올라왔다. 이때가 여덟시 삼십분께 한반도 관측 이래 최고치인 5.8의 강진이었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쭈뼛해 마비가 오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배운 '지진이 나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엎드리고 머리를 보호하세요'라는 행동강령은 내 기억회로에서 멈춰서 있었다. 이윽고 놀란 편집부 여기자들의 고성이 들렸고 회사 출입문을 뛰쳐나가는 직원들의 뒤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도 안 돼 두 번째 발생한 지진이어서 강심장이라는 기자들 간에서도 공포감이 나돌았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여진과 내일 신문제작을 위해 원고 마감을 몇 시에 끝내야 할지,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과연 여기 사무실에 더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여러 가지 고민이 모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래도 신문은 나와야 하니까…" 타이핑은 더 빨라졌다. 긴장감은 더 해졌으면 사무실 공기는 화초마저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무거웠다. 출력된 신문지면을 검토하는 데스크들의 눈길과 편집 기자들의 손길은 정지 없는 공장 기계처럼 쉼 없이 돌아갔다. 한쪽에서는 놀라서 울먹이고 있는 여직원들을 진정시키는 간부들도 보였다. 자정이 가까워져서 회사를 나왔다. '우리 가족들은 괜찮겠지…' 뒤늦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지금 어디 있어요? 아버지는 어때요, 전화가 늦었어, 걱정 많이 했지 미안해"라며 급하게 전화를 드렸다. 집 근처 황성공원 운동장에는 지진으로 집이 무너질까 두려워 밤을 지새우기로 한 사람들의 차량으로 붐볐다. '오늘밤 우리 집은 안전할까' 하는 걱정은 더 커졌고,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수십차례의 여진 탓에 나와 시민들은 공포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장성재 문화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