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靑馬)는 가고 지훈(芝薰)도 가고 그리고 수영(洙暎)의 영결식(永訣式) 그날 아침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그들이 없는 서울의 거리 청마도 지훈도 수영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깨끗한 잠적(潛跡) 다만 종로2가 버스를 내리는 두진(斗鎭)을 만나 백화노상(白 路上)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젊은 시인 출판기념회가 파한 밤거리를 남수(南秀)와 거닐고 종길(宗吉)은 어느날 아침에 전화가 걸려왔다. - 일상사의 전연 하나씩 둘씩 사라지는 소중한 문단 친구들을 기억하면서, 목월은 인간들이 경험하고 있는 '일상사(日常事)'들이 우리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시적 체험으로 변용될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삶의 허망함과 살아있다는 존재의 새로운 의식도 일상의 현실을 수용하는 자세에서 새로운 의미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시적 체험으로 토로한다. '청마'와 '지훈'과 '수영'이 가고 없는 '깨끗한 잠적(潛跡)'의 서울의 거리에는 옛날과 변함 없이 출판기념회가 개최되고 아직도 살아 있는 '남수'와 '종길'과의 관계는 계속된다. 이것이 바로 현장의 삶이며 시의 현실이다. 박목월은 정부수립 이후 6.25전쟁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주변에서 일상의 문제와 연계되는 생활과 역사의 현장을 시로 형상화한다. 목월을 '생활의 시인·인생의 시인'이라 지칭하는 것은 목월의 시를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다소 무리가 있는 지적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목월이 생활의 현장에 들어가서 그것의 체험을 소중한 시적 체험으로 승화한 작업들은 시의 대상이 초기 시와는 상당히 달라져 있다는 것을 시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가 시대를 초월해서 세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감동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향토적 서정과 원형적 고향을 탐구하여 시적 승화를 시도함으로써 민중들의 정서에 언제나 새로운 충격을 가해주는 것이다. 둘째 가장 압축된 시 형식과 전통적인 율조를 통해서 소설 한 권 이상이 될 수 있는 무한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시적 매력을 지니는 것이다.세번째 어린애 같은 동시의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시의 순수성을 계속 확보하고 있는 것 이다.네째 우리의 토속적인 세계와 참신한 이미지와 조화로 우리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주는 것이다.다섯번째 인생의 심원한 곳을 탐구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름으로써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다.끝으로 중기 시와 후기 시에 나타나는 일상사(日常事)의 시적 승화와 문명 비평적 경향 등이다. '목월'과 '동리'의 작품의 대부분은 경주를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목월의 시 청노루, 윤사월, 나그네, 달, 대불, 불국사 등은 모두 경주의 문화와 역사, 향토적 서정을 승화한 시들이다. 향토적 서정과 토착세계를 시와 소설로 승화한 두 분은 한국의 순수문학을 지켜온 영원한 동반자의 운명으로 끈끈하게 이어온 것이다. 1960년대 후반 경주에서 개최된 동리‧목월의 문학 강연의 연사로 참석하여 청중이 없어 주최 측에 화를 펄펄 내는 동리를 달래느라고 진땀을 빼던 목월선생과 동리선생의 인연은 2016년 이 시간 '동리목월문학관'에서 다시 만나 많은 이야기를 엮어 간다. 시와 소설은 '계급투쟁'이 아닌 인간의 운명과 자연을 찾는 민족정서의 승화이며, 문학은 인간과 자연이 중심이 된 '순수문학'이라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열심히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