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봉시 오한기(敖漢旗) 흥륭와문화(B.C. 6200-5200) 흥륭구유지(興隆溝遺址)에 대한 중국사회과학원 내몽고공작대의 발굴(2001-2003년) 막바지인 2003년에 여러 방유적지 가운데 한 곳에서 1500알의 '조(粟)'와 '기장(黍)'이 발견되었다. 90%는 기장(黍)이었고, 나머지 10%는 조(粟)였다. 토론토대 탄소 14 측정 결과는 B.C. 6000-5700년이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기장과 조다. 기존에 가장 이른 것으로 알려졌던 중부 유럽의 것보다 무려 2700년가량이나 앞선 것이다. 흥륭와문화에서 발견된 기장과 조는 자연 상태에서 채집된 것이 아니라, '재배종'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세계 최초의 기장과 조가 발견된 오한기 지역은 '세계한작농업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 기장과 조는 2012년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 중요 농업문화 유산'으로 정식 등재되었고, 2012년 9월 5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인증패 수령식이 열렸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세계 농경문화는 크게 보아 3유형이 있다. 첫째, 양자강 주변과 그 이남의 동남아 지역이 쌀 재배 지역이다. 둘째, 황하 주변과 그 이북 지역인 만주 한반도 북부 등과 북유럽쪽이 기장과 조 재배 지역이다. 셋째, 메소포타미아 문명 지역을 중심으로 이집트 남부 유럽 지역이 보리와 밀 재배 지역이다. 동북아시아의 경우 상, 주, 춘추 시대까지도 주식은 기장이었다. '시경'이나 '서경' 등 오래된 책들에서 상,주,춘추 시대 이야기에서는 손님을 접대하는 귀한 음식의 대명사가 '기장밥에 고깃국'이다. 만주 일대에서 흥기한 우리민족의 부여 시기에도 주식이 기장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부여라는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기장을 먹었다(扶餘之國列姓黍食)"고 기록하고 있다. 오랜 동안 기장이 주식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상·주 시대 이래로 음악을 제정할 때 기준이 되는 황종척(黃鍾尺)은 기장 1알이 모든 척도의 기준이었다. 기장 1알이 1푼(分), 9알이 1촌(寸), 기장 81(9×9)알이 황종척 1척(尺)의 길이다. 새로운 천자(人)가 서면 '하늘(天)'과 '땅(地)'의 기운을 조화시켜야 했는데, 그것이 바로 동양의 음악이었다. 천지인의 기운이 잘 조화되어 '풍년이 든 곳의 기장 1알'에서 그 상징성을 구했던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왕조가 서서 천자가 바뀌면, 그가 다스리는 곳 가운데 '풍년이 든 곳의 기장 1알'로 다시 황종척을 만들고 새롭게 악을 제정해야 한다. 악이 새롭게 재정될 때마다 기장 1알의 길이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황종척 1척의 길이가 달라졌다. 그래서 동양음악에서는 서양음악처럼 음높이가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었다. 8000년 전 흥륭와문화 시기에 만주 일대에서 이미 농경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곳이 '세계 최초의 기장과 조'를 재배한 지역이고, 이 기장과 조는 '세계중요 농업문화 유산'에 이미 등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만주 지역하면 유목, 수렵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런 선입견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만주 일대가 유목 위주로 바뀌는 것은 기원전 3000년에 기온이 급속히 떨어지고 건조한 기후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 이전 흥륭와문화 시기부터에 이미 농경이 이루어졌고, 홍산문화 시기에는 대규모 농업이 이루어지는 '농업 위주의 경제 형태'를 지닌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