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불가항력의 괴물이었다. 목덜미를 한 번 물고는 지그시 냄새를 맡고 다시 이빨을 살 속 깊이 박아 마구 흔들었다. 피가 조금 흘러나왔다. 고통보다 공포를 견디기 힘들었다. 조금씩 살을 갉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다 깨어났다. 지진이 일어난 후 여자는 매일 밤 꿈에 시달렸다. 오늘은 친구가 고향 땅 경주를 떠나는 날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만 데리고 직장에 다니는 남편을 홀로 두고서. 9월 12일 규모 5.1, 5.8, 두 차례 지진이 발생한 후 455회의 여진이 계속되었다. 불안은 극도에 달했다. 양산 단층대가 아닌 다른 단층대에서 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여자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새벽 두 시,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칠흑의 어둠이 중얼거리는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이 도시를 지진에서 구하소서" 여자는 기도를 하다말고 아베 코보가 쓴 소설 '모래의 여자'를 떠올렸다. 일탈을 꿈꾼 한 남자가 여행에 나선다. 메마른 땅을 헤매다 하룻밤 묵어갈 집을 안내받는다. 그곳은 마을에서 가장 바깥쪽 사구의 능선에 접해있는 모랫구멍이었다. 지붕보다 세 배는 높은 모래 언덕을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 곳에는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남자는 모랫구멍 속에 기우뚱 서 있는 썩어 허물어질 듯한 오두막에 갇힌다. 지진의 충격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한 여자는 책 속의 남자처럼 무너진 건물 속에 갇히는 자신을 상상했다. 하늘은 어제보다 더 맑고 바람이 조금 불었다. 여자는 밖으로 나가 금이 간 담벼락을 두드려보고 힘을 가해 밀어봤다. 무너질 것 같진 않았다. 살랑거리는 벚나무 잎이 햇빛을 받고 반짝였다. 그 옆에 선 소나무만 빽빽한 잎의 무덤을 덮어쓰고 있었다. 제 존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얼마나 숨이 답답할까. 여자는 소나무만큼 높은 사다리에 올라가 순을 치기 시작했다. 여고생 딸아이가 사다리 위의 엄마를 쳐다보고 말했다. 엄마, 지금 나무가 문제야? 우린 피난 안 가? 재난 배낭 챙겼어? 여자는 가위질을 멈추고 말했다. 갈 곳이 어디 있니? 자주 지진이 일어나는 일본 봐라. 외국으로 다 피난 가고 일본 땅이 텅 비었더니? 그래도 딸아이는 사다리에서 내려오라고 성화였다. 여기서 갇히면 어떻게 해… 어서 내려와. 여자는 사다리 위에 올라선 채 딸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얘야, 아베 코보가 쓴 '모래의 여자' 읽어 봤지? 한 남자가 사구로 여행을 떠나 모랫구멍에 갇히는 이야기? 딸아이가 이어 말했다. 모래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모래가 가라앉은 물을 마시고, 풀풀 흩날리는 모래 때문에 우산을 쓰고 밥을 먹으면서도 왜 떠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어. 지금 시대 같았으면 아마 정부가 마을 사람들을 입주시켜줬을 거야. 소설 속 시대 배경을 생각해야 해. 마을 사람들은 하루도 모래를 퍼내지 않으면 집이 무너졌고 사람이 모래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는 걸 봐야 했지. 하고 여자는 딸아이에게 소설을 이해시켰다. 그 여인은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었다. 타고 내려온 사다리는 없어지고 남자는 여인과 함께 구멍 속에 갇혀서 쉬지 않고 삽질을 했다. 그저 끝없는 모래와 구멍 밖으로 보이는 하늘뿐인 그 궁핍한 마을에도 꽃이 피고 벌레가 살고 짐승이 살았듯이 여인에게 움트는 고요한 생명력이 진흙처럼 붙은 모래를 털어내며 남자와 사랑을 나누게 한다. 사다리 위의 여자는 딸아이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싶은 충동으로 서둘러 말을 이었다. "사구 마을의 모래도 지진도 자연의 절대적 폭력이지. 그러나 여인과 마을 사람들은 모래의 폭력을 순순히 받아들이잖아. 끝없이 쏟아져 쌓이는 모래를 묵묵히 퍼내며, 도망갈 곳 없는 모순된 삶이지만 하루하루를 희망을 품고 담담하게 살아가잖아.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이 없다는 건 아니야. 여인은 바깥세상의 소식을 알려주는 라디오를 사들여오기 위해 구슬을 꿰는 부업을 열심히 했어. 자신의 존재 근원이 바로 여기라는 걸 안 거야. 엄마도 모래의 여자처럼 여길 떠나지 않을 거야. 신이 우리를 보호해주길 기도하며 뜰의 나무를 돌보고 여전히 책을 읽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 거야." 여자는 웃자란 긴 솔잎을 잡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딸아이가 사다리를 붙잡아주며 말했다. "우리 엄마는 사다리 끝에 올라선 여자네!" 여자는 삽질하는 '모래의 여자'가 자신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