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둥근 달이 고요히 창을 비치면 살며시 가을이 찾아오나봐  올 여름 경주는 몸살을 앓았다. 전국 최고치를 갱신하던 폭염과 여전히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지진에 이르기까지, 살다살다 이런 여름은 처음이었다고 사람들은 혀를 내두른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내고 탐스런 사과가 익어가고, 그 향과 맛에 취해 우리의 마음도 붉어간다. 길가에 흐드러진 코스모스를 바라보면 혼자만의 추억이 떠올라 나쁜 생각을 하다 들킨 소년처럼 피식 웃는다. 신라문화제를 알리는 깃발들이 거리마다 나부끼고, 천 년의 하늘은 다시 푸르다. 나운영 선생의 곡 '아 가을인가'를 부른다. 이 스산하고도 아련한 노래를 가르쳐준 분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다닐 때의 음악선생님이었다. 이대팔로 곱게 빗어 넘긴 단정한 머리가 인상적이었고, 우리네 말씨와는 달라서 오히려 신비하기까지 하던 말씨로, 어딜 봐도 귀공자풍이던 외모와는 달리 군복바지를 즐겨 입으며, 또 그렇게 검소하고 소탈한 모습을 닮은 웃음으로 바리톤의 저음을 구사하던…. 내 기억에 오래 남은 분이었다.  자전거로 퇴근하는 길에 휘파람을 불던 선생님의 뒷모습을 본 때도 아마 지금처럼 코스모스가 피고 잎들이 떨어져 가슴 한쪽이 허허롭던 시월이었지 싶다. 내 입에서도 선생님의 휘파람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아 가을인가 봐…. 부르기 시험을 앞두고 내 입에도 선생님의 입에도 그 노래는 맴돌았던 모양이다. 가을이 오는 시간, 시험이라는 '강제'를 끌어와 가을의 노래를 부르게 하시던 분, 검은 뿔테와 금테가 어우러진 안경이 곧잘 어울리던 선생님의 기억으로 나의 가을은 늘 시인의 자리로 나를 돌아오게 했다.  올 가을엔 갑자기 드높아진 하늘을 바라보며 '푸르른 날'이라는 가곡집을 남긴 선생님을 떠올린다. 그이가 바로 청파 신윤원 선생(1930~1991)이다. 선생은 이북에서 태어나, 해군군악학교를 졸업하고 해군본부 연주담당관을 지냈지만, 대학에서 음악과는 거리가 먼 학문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문화중학교, 문화고등학교, 경주고등학교에서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음악협회 경주지부장과 경주음악동호인회 초대회장을 지내는 등 향토의 음악문화 발전에 기여했다.  1986년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경주실내합주단을 결성하여 단장과 지휘자로서 지역의 실내악 발전에도 공헌했다. 이 합주단이 바로 현재 경주교향악단의 디딤돌이 된 사실을 기억하면 선생의 공로가 한결 피부에 와 닿는다. 선생은 창작활동도 왕성하게 했다. 그의 가곡집 '푸르른 날'과 '진달래'는 금복문화예술상, 화랑대상, 경상북도문화상에 빛나는 작품들을 담고 있다. 가곡집의 제목처럼 선생의 작품은 서정적이고 향토적이다. 암막새 청운교 등 경주라는 터를 소재로 한 시에 많은 곡을 붙였다. 또 '경주이씨 시조(始祖) 경모가'(이은상 작사)와 모포초등학교, 문화고등학교의 교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갈 수 없는 고향을 두고 경주라는 남녘에 머물러 경주의 바람과 사람과 이야기들로 노래를 지으며 살다 간 사람, 그렇게 우리네 가을 속으로 휘파람의 기억을 남기고 떠난 사람, 선생은 내게 그런 분으로 남았다. 그리고 내가 처음 만난 그때의 선생님처럼, 내 나이의 흔적도 제법 쌓인 지금에야 비로소 선생님의 아련한 가을이 스산하게 내려앉는 듯하다. 타향에서 고향을 살고자 한 선생님의 그 향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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