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 구도가 일상이 된 정치판을 직시, '개헌(改憲)'이란 승부수를 띄웠다. 한계에 다다른 5년 단임의 직선제 대통령제의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만 국민과 국회의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어내지 못해 무산됐다. 이번에 전격적으로 '개헌'을 제안한 박 대통령 역시 '국정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권 등에서 제기해 온 '개헌론(改憲論)'을 눌러 왔다. 올 들어 두 차례나 어려운 경제문제를 내세워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했던 박 대통령이 왜 이 같은 결단을 내렸을까?  박 대통령은 그동안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면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에 대통령 스스로 개헌을 공식화함으로써 개헌 논의가 정국을 뒤흔들 '뇌관(雷管)'으로 떠올랐다.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현행 헌법, 이른바 87년 체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란 비판과 함께 수명이 끝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권력 분점과 협치에 대한 요구, 사회의 다양화와 한반도 정세 변화 등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 헌법에 대한 열망이 커졌다.  이미 국회의원 190여 명이 개헌 모임을 만들고 정세균 국회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그러나 각 정파와 대선 주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권력 구조도 4년 중임 대통령제,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의견이 제각각이라 '합종연횡' 새판 짜기를 촉발할 수 있다. 대선이 코앞이고 현 국회의원 임기가 단축될 수 있는 등 난관도 적지 않다. 개헌 주도권을 놓고 청와대와 야당은 각을 세우고 있다. 야당은 최순실 의혹을 거론하며 박 대통령이 뒤늦게 개헌을 꺼낸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현시점의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기류가 강한 것은 총론에서 이구동성으로 박수를 쳐놓고 각론에서는 당리당략 때문에 진통이 예상된다. 대통령 단임 직선제인 1987년 헌법을 바꾸자는 개헌론은 역대 정권마다 제기됐으나 번번이 실패한 것은 국회와 국민공감대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내각제 개헌'을 매개로 각각 '3당 합당'과 'DJP 연합'을 이뤄 집권에 성공했으나,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스스로 임기 중에 개헌론을 꺼내 들며 추진 의지를 밝혔음에도 무위에 그쳤다. 이명박 정권 개헌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은 개헌의 당위성을 외치며 전국을 누볐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두 대통령이 내건 개헌 카드는 세상 밖에 나오자마자 반대론에 부딪혀 제대로 된 논의 한번 이뤄지지 못하고 도리어 '레임덕'을 부채질하는 자충수가 됐지만 박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이전 대통령들이 처했던 정치 환경과 다르다는 점에서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 카드의 특징은 일단 누구도 대놓고 거부할 수 없는 정치 지형 속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전 실패 사례와 출발부터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고, 70%가 넘는 국민이 지지하는 등 여론도 우호적이다. 어쨌든 개헌을 국민투표에 붙이기 위해선 국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 하나만 반대해도 불가능하다. 개헌은 야당의 참여와 국민적 동의가 필수적이고 그것을 위해선 대통령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여론(輿論)에 귀 기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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