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연설이 있던 지난 월요일은 국정을 크게 흔들만한 대통령 관련 메가톤급 이슈가 한꺼번에 두개나 터져 나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을 너무나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동안 북 핵과 경제가 국정의 급선무라며 개헌논의를 반대해왔던 대통령이 개헌추진을 제안한 날 오후 '최순실 의혹'을 보도해온 일부 언론이 민주주의의 근간을 짓밟는 대통령 기밀 사전누설혐의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개헌논의 하나만 해도 국정의 모든 현안들을 빨아들일만한 블랙홀로 보고 있는데 민주방식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과 '정책의견'은 물론 '인사내용'까지 자연인 '최순실'씨가 미리 보고받고 의견을 보탰다는 것이다. 이같은 보도는 최씨가 쓰던 사무실의 PC에서 드러난 문서에 의한 것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기문란'과 '헌정파탄'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현행헌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입장에서 헌법을 더 좋게 고치겠다는 발상을 어느 국민이 믿을 수 있겠는가? 최순실 '국정농단' 상황에서 개헌을 입밖에 내놓을 처지는 아니지만 헌정의 여러 문제점들은 개헌의 필요성이 절실함을 말해준다. 1987년 헌법체제는 내년이면 한 세대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현실과 숱한 괴리를 보여왔다. 이미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정치권과 헌법학자들은 물론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국회에는 19대국회 이전에 헌법학자들이 만든 개정헌법안이 준비되어 있고 19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개헌모임을 갖고 있어 그간의 진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과 2주전까지만 해도 강한 '반대' 입장을 가졌던 박 대통령이 태도를 바꾸어 느닷없이 개헌추진을 선언한 것은 단순히 그동안의 사정을 보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헌법파탄의 위기를 자초한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주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다. 현 시국에선 우선 박근혜 정부가 개헌을 추진하기 보다 우병우·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태에 대한 객관성있는 사실규명에 적극 나서야하고 그에 따른 책임문제도 확실하게 가려야 한다. 그런 다음 개헌에 대한 필요성이 정당들과 국민들에 의해 강력히 제기된다면 대통령이 빠진 상태에서 범국민적 추진체를 만들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식이 될 것이다. 국기문란과 헌정파탄의 위기가 아니라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와 국회가 투 트랙으로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국민이 선출하지 않은 자연인 최순실이 대통령 집무행위를 대행한 것 같은 혐의사실이 드러나 대통령의 소명책임이 거론되는 마당에 개헌을 주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합의된 절차대로 개헌이 추진된다 해도 우병우·최순실 의혹은 국회차원의 특검을 하더라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히고 의법처리하는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확실히 처리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헌법을 새로 만들더라도 또다시 '국기문란자(國基紊亂者)'가 나온다면 그 헌법은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헌법개정을 둘러싸고 정당들과 헌법학자,국민들 사이에선 많은 의견들과 제안이 있었다. 이같은 국민적 제안들이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개헌이라면 헌법개정과정에서 국회와 국민들의 동의는 물론 이 헌법에 의해 탄생되는 제7공화국은 순항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현정권이 의혹해소는 뒷전으로 하고 개헌에 나선다든지, 특정 대선예비주자나 특정 정당의 정략적 목적으로 개헌을 주도하려든다면 국론분열과 함께 국가적 대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 모두가 현안문제 해결에 슬기를 모아야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