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스가 최순실을 제정 러시아 말기 비선실세였던 라스푸틴에 비유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의 '요승'이다. 시베리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904년에 고향을 떠나 신비적인 편신교(鞭身敎)의 일파에 가입해 각지를 순례하고 농민으로부터 '성자'라는 평판을 들었다. 190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해 황후와 니콜라이 2세로부터 황태자의 혈우병을 낫게했다며 총애를 얻고 궁정에 세력을 가진 후 종교 및 내치·외교에 관여했다. 그 생활이 몹시 방종해지자, 드디어 그 악영향을 제거하려는 귀족의 일단에 의해 1916년 길거리에서 암살됐다. 그 후 러시아 황실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통치자를 홀려 나라를 기울게 한 엉터리 종교인은 우리나라 역사에도 있다. 바로 구한말의 진령군이다. 진령군은 임오군란으로 궁을 따나 피신했던 명성황후가 궁으로 돌아가게 될 날을 알아맞췄다는 '과부 무당'이다. 궁으로 돌아온 명성황후는 그 무당을 궁으로 불러들여 진령군으로 책봉하고 극진하게 예우했다. 진령군은 무시로 임금과 황후를 알현하고 국정에 관여했다. 그 위세로 벼슬을 얻고자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복기해 보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날 '희망의 복주머니' 행사가 있었는데 그 복주머니는 '오방낭'이라고 해서 주술적 의미를 가졌다. 비서실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딴전을 피웠지만 유감스럽게도 봉건시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국민과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못한 세력들에게 철저하게 '불통'으로 일관하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사적인 '내통'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내통'의 실세가 귀국해 검찰에 출두했지만 눈부시게 일사불란한 최순실의 등장에 국민들은 뭔가 또 다른 '내통'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의 눈길이 있다. 국민들은 하야를 외치고 있고 외신은 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국민 모두가 치욕스러운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