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실패했을까? 실패의 원인을 찾고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학문이 있다. 일본의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명예교수가 창시한 실패학이다. 그 실패학에서 교과서로 삼고 있는 책이 조선 선조때 영의정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이다. 지난 잘못을 징계하여 후환을 대비하기 위해 썼다. 영덕은 1970년대까지 동해안에서 제일 큰 항구였다. 고려 이후 영해부는 울진 평해, 영양, 포항 청하까지 관할했다. 1970년대만 해도 영덕은 인구 12만으로 포항과 비슷하고 울진보다 4만이나 많았다. 불과 40여년도 안되어 영덕은 포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낙후되고 울진보다 1만 2천명 적은 지역으로 전락했다. 영덕은 행정안전부 시군구 낙후도 조사에서 231시군구 중 200위로 최하위권이다. 재정자립도도 전국 평균 50.8%의 1/3도 안되는 14.5%에 불과하다. 왜 영덕은 동해안에서 수천년 동안 앞서다가 불과 40여년만에 전국에서 가장 낙후되었나? 영덕은 무엇을 실패했나? 첫째, 우리는 10년 뒤를 내다보지 못했다. 미래를 보는 눈이 부족했다. 점점 여건이 어려워 지는 농업, 수산업에 의존한 채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했다. 대게 수확량은 연간 820톤에서 376톤으로 절반 이상 줄고, 농업 수익도 절반이상 떨어졌다. 10년 뒤 미래의 먹거리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못했고 많은 기회를 놓쳤다. 입지조건이 객관적 타당성으로 가장 적합하다던 제2 포항제철을 가져오지 못하고 포항의 배후 중핵도시로 동반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마리나항은 울진으로,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트는 경주로, 도청 제2청사는 포항으로 다 놓치고 있다. 지금 영덕은 정규직원 20명이상의 제대로 된 기업 하나 없다. 밤 8시면 상점 불이 꺼지고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상인들의 매출은 반으로 줄고 빚은 2배로 늘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교육 때문에 외지로 이사 갈 걱정을 해야 한다. 70억 들인 강구 범선 조명은 불이 켜지지 않은 지 오래고, 300억 들인 문산호는 개관도 하기 전에 바닥에 금이 가있다. 영덕이라는 네비게이션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우리는 행정력, 예산 확보력이 뒤떨어졌다. 자치단체 예산을 정부안에 반영하는 것이 고수이고, 국회상임위에서 반영하는 것은 중수, 예결위 쪽지예산은 하수라고 한다. 영덕은 예산을 정부안에 반영하는 능력이 최하위이다. 영덕 예산은 3,600억원 정도로 울진 예산 6,300억원의 절반 조금 넘는다. 남북 7축도로는 완공되는데 20년 이상 걸렸다. 동서4축 도로 개통을 앞둔 시점에서 영덕 IC에서 해안도로로 연결하는 도로는 예산이 없어 2025년경까지 기다려야 한다. 국토해양부장관이 3,026억원을 투자하여 여객부두, 화물부두 등을 만들겠다는 강구연안항은 예산 확보를 못해 477억으로 대폭 감축되었다. 오직 선거 때마다 여당에 몰표를 몰아 주어 그 환심으로 예산을 많이 배정해 주기를 막연히 기다려왔다. 그러나 지난 40여년 동안 본 것처럼 선거가 끝나면 곧 잊혀 진다. 오히려 잡은 고기에는 미끼를 주지 않는다. 영덕이라는 자동차 역시 고장 나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이미 나와 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미래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행정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10년뒤 먹거리와 교육 등 미래 비젼과 철학을 분명히 해야한다. '주영야경' 즉 낮에는 영덕에 있고 밤에는 중앙부처와 기업체를 찾아 다녀야 한다. 영덕 안에서 아무리 뛰어 보아도 우물안 개구리다. 답은 문 밖에 있다. 차가 고장 났을 때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고장난 원인을 찾고 필요하면 수리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 차안에서 악셀레이터만 계속 밟으면 더 위험해 진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젼과 철학,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행정력 이것 없이는 영덕의 발전은 없다 이것 없이는 아무리 동서4축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원전 수십 기가 들어와도 영덕을 달리게 할 수 없다. 영덕 인구는 해마다 400∼500명씩 줄고 있다. 수십년 뒤에는 영덕이 지도상에 사라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